고독하고 의연한 나무들
......
나무들은 성스럽다. 나무에 귀 기울이고 나무와 이야기를 나눌 줄 아는 사람은 진실을 체험한다. 나무들은 무슨 교훈을 설교한다거나 처방을 내린다거나 하지 않는다. 나무는 개별적인 일에는 무관심하지만 삶의 근원적인 법칙을 알려준다.
한 그루의 나무가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내 안에는 핵심이, 하나의 불꽃이 하나의 생각이 숨겨져 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다. 영원한 자연의 어머니는 나와 더불어 전례가 없던 일을 시도한다. 내 모습과 내 피부 밑에 흐르는 혈관은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내 우듬지에 매달린 가장 작은 잎사귀가 벌이는 유희, 내 가지에 난 아주 작은 상처조차 유일한 것이다. 내 사명은 바로 그런 일회적인 것 속에서 영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 그루의 나무가 이렇게 이야기한다.
“믿음이야말로 나의 힘이다. 나는 조상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 해마다 내 몸에서 탄생하는 수천의 자손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다. 나는 내 씨앗 속에 간직된 비밀을 지닌 채 마지막까지 살아간다. 그 밖에 어떤 것도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다. 나는 내 안에 신이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나의 의무가 성스럽다고 믿는다. 이 믿음 때문에 나는 살고 있다.”
우리들이 서글퍼져 더 이상 삶을 버텨내기 힘들어질 때, 나무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조용히 하라! 조용히 하라! 나를 바라보라! 삶은 쉬은 것이 아니다. 삶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모두 어린아이 같은 것이다. 신이 네 안에서 말씀하시도록 하라. 그리고 너는 침묵하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네가 가는 길이 너를 어머니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딛는 걸음마다, 매일 매일이 너를 새롭게 어머니에게 이끌어 간다. 고향이란 여기 혹은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든가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
밤바람에 소슬거리는 나무들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정처 없이 떠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가만히 오랫동안 귀 기울이노라면, 방랑하고 싶은 마음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것은 고통이다. 고통을 겪으면서도 거기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그 무엇이다. 방랑은 고향을 그리는 향수이며, 어머니를 기억하려는 동경이다. 삶의 새로운 비유를 찾으려는 동경이다. 방랑은 고향집으로 이끌어 간다. 모든 길은 고향집으로 향해 있으며, 모든 걸음은 탄생이다. 모든 걸음은 죽이며, 모든 무덤은 어머니이다.
그처럼 나무는 저녁에 우리가 어린아이처럼 불안해 할 때 솨솨 소리를 내며 말한다. 나무들은 긴 생각을 지니고 있다. 우리들보다 더 오래 살며, 호흡은 길고 고요하다. 우리가 나무들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그들은 우리보다 현명하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면서 생각이 짧고 어린애같이 서두르는 우리들은 말할 수 없는 즐거움에 젖는다. 나무들에게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사진 이외의 다른 무엇이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1918년]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