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출간된 이 책은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작은 선풍을 일으켰다. 필리스의 시 대부분은 고생스러운 인생살이와 가족의 죽음, 특히 어린아이의 죽음을 다뤄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 시집은 신선하게도 서문 대신 그녀의 모습을 실었다. 동판화로 제작한 여자 노예, 아니 미국 여성의 모습을 책에 실은 것 자체가 매우 드문 일이었다. 노예인 여자가 이렇게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정말로 필리스가 시를 썼는지 의심했고, 보스턴의 고위 관리 18명이 필리스가 이 시의 저자임을 증명하는 글을 싣기도 했다.
작품을 쓰고 있는 필리스 위클리
<종교와 도덕을 비롯한 여러 주제에 관한 시>의 표지
1773년 스키피오 무어헤드(1770년대 활동)의 동판화
그녀가 썼던 첫번째 시는 <허시 씨와 커핀 씨>였다. 이 시는 바닷가에서 험한 풍랑을 만난 어부 두 명이 끊임없이 신에게 간구해 마침내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1770년 9월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던 조지 화이트필드 목사가 세상을 떠났다. 필리스는 그를 기리는 애가를 지었고, 그 작춤이 북미 식민지의 수많은 신문에 실리면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필리스의 시는 그녀가 자랐던 미국의 청교도주의 바탕을 두었고, 당시 뉴잉글랜드의 가치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때때로 필리스의 목소리는 노예 문제에 대한 감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1830년대에 노예폐지론자들이 필리스의 시를 다시 인쇄하기도 했다. 필리스의 삶은 이후 아프리카 출신 미국인 세대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출처 : 판도라의 도서관 여성과 책의 문화 중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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