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yes24 글| 정재승, 정리/김민영 게재일 | 2011.12.09
봄부터 시작된 '희망의 인문학 -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마지막 인문학자는 성공회대 교수였다
지난 11월 23일 이화여대 언어교육관에서 열린 ‘정재승, 신영복 교수 특별대담 - 여럿이 함께 숲으로 가는 길’ 현장. 3백여 명의 관객이 자리를 메웠다. 매서운 추위가 닥친 저녁이었지만,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스승’을 기다렸다. 신영복 교수가 등장하자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혼란과 좌절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젊은이들은 진지하게 듣고, 물었다. 스승의 답은 따스했다. 강의 말미,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숲으로 가는 길’을 새긴 듯했다. 이날 대담은 페이스북으로 생중계 되었다. 사회는 유정아 아나운서가 맡았다.
유정아 : 안녕하세요. 사회를 맡은 아나운서 유정아입니다. ‘희망의 인문학 -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라는 주제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10분의 인문학자를 만나셨는데요. 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 강신주 철학박사, 건축가 황두진, 사회학자 송호근, 물리학자 장회익, 그리고 10번째로 신영복 교수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큰 자리다 보니 저는 도우미로 초대를 받았네요.
먼저 정재승 교수님을 소개해드릴께요. 책 『과학콘서트』로 큰 열풍을 몰고 오셨죠. 과학서적의 이전, 이후를 나눴다는 평을 받았는데요. 어려운 과학이라는 주제를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애매하고,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막무가내식 주장이 만연하는 가운데 제대로 된 정보를 던져 준 과학자이기에 젊은이들의 멘토로 자리잡으신 게 아닌가 합니다. 정재승 교수 뜨거운 박수로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정재승 : 안녕하세요. 정재승입니다. 반갑습니다. ‘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10번째 인터뷰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정말 각별한 시간이 될텐데요. 바로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간단하게 약력을 소개해드리고 모시겠습니다. 1941년 밀양에서 태어나셨고요. 서울대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셨습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경제학을 가르치시던 중 통일혁명단 사건으로 구속되셔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으셨습니다. 20년간 의 수감생활을 거치셨고 1988년 특별가석방 되신 후, 성공회대에서 사회과학부 교수로 계셨죠. 2006년 정년퇴임 하셨습니다. 지금은 석좌교수로 계십니다. 선생님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금도 나눔과 소통의 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우리시대의 스승 신영복 교수님 모시겠습니다.
신영복 : 반갑습니다. 오늘 두 분 양쪽에 계셔서 믿음직합니다. (웃음) 경험이 많은 분들이 계셔서, 제가 조리 없어도 잘 잡아주시리라 믿습니다. 또 어느 정도 준비된 청중들이실 것 같아요.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정재승 : 젊은이들과 만날 기회가 많으시죠.
신영복 : 네, 자주 만나려고 해요.
정재승 : 젊음을 통째로 감옥에서 보내셨잖아요. 어느 곳에 ‘청춘은 감옥이었다’고 쓰기도 하셨는데요. 요즘 젊은이들 보시면 어떠세요.
신영복 : 지금 청년들도 감옥에 있는 것 같아요. 청년실업이나 지금 시대에 겪는 고통, 보이지 않는 감옥 같은 생활이죠. 그런 공감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오늘 나를 부르신 게 아닌가 해요.
청년시절 20년의 감옥생활, 인간에 대한 이해의 기간
정재승 : 그간 인문학분야 10분의 석학을 만나왔습니다. 지금 인문학은 어디에 와있고 나아갈 방향은 무엇이며,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가를 알아봤는데요. 어떻게 살아오셨고,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지, 편안하고 솔직하게 답해주시면 됩니다.
신영복 : 오늘 주제가 ‘희망의 인문학’이죠. 우리시대 고민해야 할 내용이 무엇인가를 봐야 할텐데요.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공부가 아닌가 해요. 청년시절을 감옥에서 보냈는데, 20대 후반부터 40대 후반까지요. 가장 중요한 시기를 감옥에 있던 셈이죠. 감옥에서 느꼈던 인간에 대한 이해, 그것이 우리가 천착해 있는 인문학적 내용과 같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정재승 : 선생님의 삶을 보다 잘 이해하려면, 통일혁명당을 조명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사건이었고, 왜 감옥에 가게 되셨나요.
신영복 : 제가 59학번이에요. (웃음) 몇 년 전에 서울대 가서 09학번 학생들과 만났어요. 59와 09의 만남이었죠. 50년의 세월차가 있더라고요. 물어보신 사건, 참 오래됐네요. 그때 상황을 여러분은 잘 모르실거에요. 대학 2학년 때 4.19가 있었고요. 3학년 때 5.16 군사혁명 이후로 학생들의 저항과 반대 분위기가 형성되었어요. 제가 학생서클 운동의 1세대입니다. 사실, 당시엔 통일혁명당이란 게 없었어요, 감옥에 들어간 후에 만들어졌다는 걸 들었죠. 아무튼 감옥에 가게 되고, 무기징역까지 받을 줄 전혀 몰랐죠. 중앙정보부에서 취조할 때도 자기들끼리 얘기 하더라고요 ‘3년, 5년일꺼야’ 라고요. 그런데 사형구형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저는 군사재판을 받았습니다. 현역으로 육군중위였기 때문이죠. 68년 김신조 사태가 일어났고, 푸에블로호가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拿捕)되어 북한에 억류되기도 했죠. 또 삼선개헌, 한일회담, 독도문제가 거론되며 복잡한 상황이었죠. 정확하진 않지만, 당시 서울대 학생서클 간부 하나를 사형을 시켜야한다는 주장이 있었다고 해요.
정재승 : 아, 그러니까 통일혁명당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주요 간부라는 누명을 쓰신거네요.
신영복 : 사실, 문리대 정치과 선배 한 분이 관련이 있었어요. 북한에 다녀오고 간첩사건과 관련이 있었고요. 난 학생서클 1세대였고, 학생운동을 열심히 했죠.
정재승 : 당시에 150여명의 간첩단 사건 같은 게 나왔죠.
신영복 : 네.
정재승 : 어떻게 보면 억울한 상황으로 감옥에 가고, 무기징역까지 선고 받으신거네요.
신영복 : 여러 가지 생각이 참 많았죠. 조금씩 자기 문제를 사회적 관점, 역사적 관점으로 보게도 되었어요. 그러고 보니 역사적 격동기에 감옥에서 인생을 보낸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더라고요. 나도 그 중 하나구나, 팔자구나 생각했죠.
유정아 : 수많은 사람이 있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되면,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인생을 다시 극복하지 못하게도 만들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런 청춘을 보내며 자기성찰적인 글이 나왔는지요.
정재승 : 정말요. 그런데도 피부가 너무 뽀야세요. 동안의 비결은 뭔가요 (웃음)
신영복 : (웃음) 당시 150명이 구속됐어요. 선배 후배들이 다 들어갔지요. 나는 후배들을 많이 데리고 들어온 선배입장이었기 때문에 죄책감, 미안함으로 고통스러웠어요. 나 자신의 문제보다 그것이 훨씬 고통스러웠죠. 또, 조용히 혼자 있을 땐 ‘사형이라니. 너무 빨리 죽는구나’ 이런 쓸쓸한 마음이 들었어요. 할 것도 참 많았는데 말이죠. 막상 무기로 감형이 되고 나서는 암담하기도 했어요. 끝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동굴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었어요. 용케 잘 걸어나왔죠.
1988년 첫 출간된 이래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기며 이 시대의 고전이 된 책
한 달에 한 번 쓸 수 있는 엽서, 정신의 해방구
정재승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대학생들이라면 한번쯤 읽었을텐데요. 가족들과 나눈 편지글입니다. 어떻게 그 글들을 쓰게 되셨는지요.
신영복 : 지금은 감옥이 많이 달라졌죠. 집필, 티비 시청도 되고요. 그때는 일체 집필도 허가되지 않고, 편지도 한 달에 한 번씩 엽서를 신청해서 쓸 수 있었어요. 교도관의 감시하에 썼고요. 생소한 감옥에 던져지니, 충격적인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그 생각들을 어디다 좀 적었으면 했죠. 다 잊어버릴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유일하게 기록이 허락되는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쓴거에요. 아마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에 그런 사색적인 내용을 쓴 사람은 없었겠죠.
정재승 : 굉장히 사색적이고, 산문이긴 하지만 시적이기도 해요. 그런 편지들을 받은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영복 : 아직 정신적으로 무너지진 않았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겠죠.
정재승 : 전 반대였을 것 같아요. 아니 점점 이상해지고 있구나. 이런... (웃음)
유정아 : 내지는 피부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신영복 : 개인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밖에 못쓰기 때문에 한 달 내내 이 내용을 이렇게 쓰자 머릿속으로 정리를 했어요.
유정아 : 월간지 기고문이네요.
신영복 : 교정까지 완벽하게 끝냅니다. 20대라 머리가 명석했죠. 지금은 『엽서』라는 영인본이 나와 있죠. 그걸 보고 사람들이 말해요. ‘어떻게 고친 데가 하나도 없냐’고요.
유정아 : 그 속에서 퇴고를 다 하신거네요.
신영복 : 그렇죠.
정재승 : 교도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영복 : 편지를 검열하는 건 보안과, 교무과에서 하는데 사실 조심스럽죠. 검열을 전제로 하니까요. 통과되지 않을 이야기는 안됐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보낸 편지가 없어진 게 상당했어요. 검열 과정에서 사라졌겠죠. 까다로운 검열관 때는 피해서 썼어요. 통과수위가 낮은 사람이 검열할 때 썼어요. 그랬는데도, 많은 독자들이 물어요. ‘국가보안법이나 통혁당 간부라는 사람의 서신에 비전투적인 글만 나오느냐’고요.
유정아 : 정재승 선생님은 어떤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정재승 : 많은 분들이 꼽으시는 부분일거에요. 옆에 있는 동료들을 열덩어리로 느끼게 해 증오하게 만드는 여름에 대한 글이요. 생명, 계절의 변화에 주목하신 여러 부분 모두 인상적이었어요. 그 안에서 마치 득도하신 것 같았어요. 굉장한 분노와 억울함이 있었을텐데, 어떻게 밖에 있는 사람에게 평온함을 줄 정도로 사색의 심연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까. 정말 신기했어요. 문장을 한 번 쭉 읽어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어요. 여러 번 읽고 상상을 해야 그려지는 책이었어요.
신영복 : 까다로운 자기검열을 하게 되어, 글 전달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어요. 저는 글을 읽다보면, 행간에 묻어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지금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괴롭기도 해서요.
고리끼가 그랬듯이, 감옥생활은 나의 대학생활
정재승 : 책에 실린 에피소드 중, 감옥생활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장면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신영복 : 감옥 20년을 나의 대학생활이라고 하는데요. 고리끼가 쓴 『나의 대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고리끼의 학력은 초등 3학년이 전부였죠. 볼가강의 뱃사공 일을 도왔는데요. 배의 주방장이 독서를 하는 사람이었대요. 그게 책을 보게 된 시작이었죠. 그의 책 『나의 대학』은 해방 직후에 번역되었고, 대학 다닐 때 고서점을 다 뒤져 찾아냈어요. 볼가강 근처 노동자 합숙소에서 지낸 2~3년간의 시절을 ‘나의 대학시절’이라고 해요.
내가 보낸 20~30년도 그랬던 것 같아요. 갇혀 있는 세월이긴 했지만, 밖에 있었다면 절대로 만나지 못했을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와 역사 그리고 인간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정재승 : 그래서인지 관계와 소통에 주목하고 계신데요. 감옥 안과 밖의 관계, 소통은 어떻게 다른가요.
신영복 : 오늘의 주제가 ‘희망의 인문학’인데요. 근대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입니다. 자기의 주체성을 완강히 지키며 상대를 타자화시키고, 자연까지 대상화합니다. 이걸 청산하고 뛰어넘는 게 탈근대죠. 우리 시대가 당면한 과제라는 생각에서 관계론을 이야기하곤 하는데요. 인간적 관계를 가장 밀도 높게 경험한 게 감옥이 아닌가 합니다. 뜨거운 여름에는 칼 잠을 잡니다. 옆으로 누워서요. 수용인원이 많으니까요.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돼요. 사실, 그 사람은 아무 죄가 없거든요. 인간적인 관계를 잘못 파악하는 경우도 참 많아요.
감방마다 버릇없는 친구가 있어요. ‘싸가지 없는’ 사람이 각 방마다 있어요. 그 사람 만기 기다리다 자기징역 다 간다는 말까지 있어요. ‘쟤 언제 나가지?’ 그러고 기다리는 거에요. 재미있는 건, 그 사람 나간 날은 참 행복한데 2~3일 지나면 또 그런 사람이 들어온다는 거죠.
유정아 : 자신의 복역기간을 짧게 느끼게 해주는 사람들일 수도 있네요.
신영복 : 그러니까 증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 결함이 없진 않지만, 몇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겪으며 상황이 그런 사람을 만들어 내는구나라는 깨달음을 겪게 되었죠. 우리가 갖는 인간관계가 얼마나 잘못되는가 말이죠.
정재승 : 싸가지 없는 사람의 특징은 이기적인가요, 무례한가요.
신영복 : 그런 면도 없지 않죠. 한편 열악한 상황에서 다른 사람 배려하면 자기가 너무 힘들어요. 1차적 반응은 배타적 자기존재성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기도 해요.
감옥에서 자살하지 않은 건 햇빛과 가족, 친구들 때문
정재승 : 지금 생각해보면 20년을 감옥이라는 공간에서 생활한다는 건 정말 끔찍한데요. 그 기간의 감정 변화는 어땠나요. 낙담도 하다, 희망도 가졌을 수도 있고요.
신영복 : 교도소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요. 보도가 안 되지만요. 재소자가 지켜야 할 준수사항이 30개 정도 있거든요. 제가 붓글씨를 잘 써서, 그걸 많이 썼어요. 제1항이 교도관의 지시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리고 5~6번째에 자살을 해서는 안 된다는 항목이 있죠. 꽤 비중이 높은 준수사항입니다.
제가 무기징역 받고 추운 독방에 앉아 있을 때, 왜 자살하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심각하게 고민했었죠.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하거든요.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햇빛 때문에 안 죽었어요. 그때 있었던 방이 북서향인데, 2시간쯤 햇빛이 들어와요. 가장 햇빛이 클 때가 신문지 펼쳤을 때 정도구요. 햇빛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내일 햇빛을 기다리고 싶어 안 죽었어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비록 20년의 감옥이 삶 속에 있지만 결코 손해는 아니다. 태어나지 않은 것과 비교한다면요.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다음에는 내가 자살하면 굉장히 슬퍼할 사람들이 있었어요. 부모, 형제, 친구... 자기의 존재라는 것이 배타적 존재성이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해요. <어린왕자>를 보면 리비아사막에서 어느 비행사가 불시착하잖아요. 살아날 가망성이 없으니 모래톱을 파서 시체가 들어갈 무덤을 준비하며 조난당해서 죽는구나,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죠. 너만 죽는 건 아니야. 너의 소식을 기다리는 가족들도 조난자야. 이런 질문을 던지죠.
유정아 : 적극적인 의지를 갖고 살진 못할지라도, 어떤 사람에게 큰 슬픔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말씀인가요.
신영복 : 맞습니다. 우리 삶이란 게, 존재성이란 그런 게 아닐까요. 저도 근대적 교육을 받았기에 사고방식도 근대적이었죠. 같은 무기수이면서도 다른 재소자를 일단 타자화했어요. 딱 거리를 두고 분석을 해요. 죄명, 형기, 출신, 학력 이런 걸요. 대상화하는 거죠. 겉으로는 친절하지만요. 나중에 알았지만, 5년간은 왕따였어요. 특별하게 따돌리진 않지만, 인간적인 관계를 만들지 못했던 시기였죠. 그 후 그 사람들의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만 소개할게요. 마흔쯤 된 친구인데, 집도 절도 없어 접견(면회)도 오지 않습니다. 어느날 접견 호출을 받아 놀랍니다. 우리도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몰려가서 물으니 대꾸를 하지 않고 침울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놈이 왔대요.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 친구가 두세 살 때 누이동생과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 길이 없어 삼촌댁에 맡기고 어머니가 돈 벌러 가셨다 못 돌아오고 재가(再嫁)를 합니다. 재가 한 집이 마침 두세 살 남매를 두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자기 자식을 못 키우고, 다른 아이들을 키운거죠. 그렇게 키운 애가 찾아 온 겁니다. 나중에 알고 나니 이 사람이 쓸쓸하다는 거죠. 찾아온 분이 하는 말이 “만약,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모시고 오지 않았다면 내가 그 속에 있고, 당신이 밖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분이었죠.
대상을 객관화하는 존재론적 사고에서 벗어나자 왕따 면해…
나도 그 사람과 같은 환경, 부모였다면 똑같은 죄명으로 앉아 있겠구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근대적 사고로 타자화 하던 시기에서 5년쯤 후에 다른 사람의 삶을 공감하게 되었고 그때 왕따를 면했던 것 같습니다. 참 많은 발전을 한 거죠. 흐뭇했죠.
공감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인간관계가 되지 않았어요. 공감, 동정 모두 좋은 품성이지만, 다른 사람을 동정하는 것도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으니까요. 물질적 도움은 되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선 ‘내가 가여운 입장에 있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죠. 어떤 면에선 잔인한 거죠. 그래서 동정하고 동정 받는 관계는 대칭적 관계가 되지 못해요.
근대사회가 도달한 최고의 사회적 윤리, 똘레랑스가 그것이죠. 평화적으로 공존하는 똘레랑스라는 프랑스 중심의 근대적 사고가 도달한 문화가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감옥에서 그걸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유정아 : 다른 사람과의 연대, 연민은 초보적인 감정에서 비롯되는 거잖아요. 공감이라는 건 불쌍하지 않고, 극악무도한 존재라도 ‘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었겠구나’라는 정도라면, 관용이라는 건 그 사람이 되어보고, 그 외에 어떤 게 한 단계 더 보태지는 건가요?
신영복 : 바로 그 부분, 나는 상당한 정도의 발전이라고 생각했죠. 근대적 사고의 공감이요. 머리에서 가슴까지 왔다고 한 그 표현인데요. 그 먼 여정을 감옥에서 겪은 겁니다. 책에도 썼지만, 대단히 충격적인 경험을 해요. 목공장에서 목공일을 배웠던 때인데, 목수가 주춧돌부터 그리고 지붕을 마지막에 그렸어요. 제가 충격을 받았어요. 보통사람이라면 지붕부터 그리지 않았을까요. 학교에서 책을 통해서 도달한 인식이 얼마나 관념적인가 알게 됐거든요. 일하는 사람은 집짓는 순서와 그리는 순서가 같더라고요. 만약, 그런 시기에 똘레랑스가 최고의 덕목이라면, 당신은 주춧돌부터 그리세요. 난 지붕부터. 우리 평화적으로 공존하자. 이게 똘레랑스죠. 타인을 역시, 밖에 세우는거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의 육필 원본을 영인한 『엽서』
공감과 애정에서 머물러서는 안되고, 관용으로 자기 변화 이어져야…
중요한 건 사유와 다양성을 공존이 아니라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대단히 반갑고 고마운 기회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자기 변화로 이어지는 노마드, 탈주와 유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걸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감과 애정도 근대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지 못할 겁니다. 그래서 다시, 가슴에서 발까지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야기하는 ‘숲’으로 가야합니다. 오만한 이야기지만, 발까지 가려고 노력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정재승 : 나는 똘레랑스를 갖고 상대의 의견을 참을 마음이 있는데, 내 생각을 참아주지 않아 관용이 부족한 사람과 어떻게 공존해야 할까요.
신영복 : 어려운 문제죠. 탈근대라는 것이 근대사회가 도달한 공존, 똘레랑스를 넘은 탈주가 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똘레랑스와 공존도 이루지 못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정말 필요한 거죠. 논리적 사고마저도 부족하죠. 뭔가 변화하고 뛰어넘기 위해서는 인간관계를 적어도 제가 감옥에서 겪은 것처럼, 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그 사람만이 아닌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와 지금의 처지를 아울러서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 두 개를 떼서 받아들이는 게 분석한다는 거거든요. 감옥에서 10년 이상을 살면 만기자를 보내며 우리끼리 이야기해요. ‘한 번은 더 들어오지, 아마’ ‘1년 안에 들어와’ 제가 처음에 계속 틀렸어요. 그런데, 그게 반대로 되더라고요. 장기수 노인들은 짜게 평가하더라고요. 차이를 알게 된 게 저는 그 사람만 봤는데, 저보다 오래 있었던 분들은 나가서 어떤 상황에서 살아갈 건가를 아울러 봐요. 그래서 관계를 만든다는 건, 사람만이 아닌 살아갈 환경과 처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처음에 그런 몇 번의 경험을 하고 나선, 그 부분에 대해서 아주 절제를 했습니다.
관계 맺음, 그 사람만이 아니라 살아갈 환경과 처지까지 봐야…
대전교도소에만 15년을 있었어요. 참 많은 사람들이 만기 출소하는 걸 봤어요. 만기인사라는 걸해요. ‘신세 많이 졌습니다. 몸 건강히 계시다 나오시기 바랍니다.’ 판에 박힌 교도소 인사법이 있어요. 그러면 우리 같은 국가보안법 무기수는 ‘국가의 은총으로 사회에 나오세요’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그리고 또 다시 들어와요. (웃음) 다시 출소해서, 또 같은 인사를 해요. 가장 많이 만기인사를 나눈 횟수가 무려 7번입니다. 나와 나이도 비슷해요. 나중엔 자기도 민망했던지 악수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그런데 왜 다른 사람들처럼 새출발 하게’라는 인사를 안하세요. 생각해보니, 전 한 번도 그 말을 안했더라고요. 그 사람이 나가서 살아갈 상황을 대강은 알아요. 사람만 보지 않는 거죠. 집도 절도 없이, 그런 사람이 마음잡고 어떻게 살아요? 자리라도 잡아야 할텐데,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나가면 잘해봐라.’ 그 이상을 못했어요. 인간관계란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그 사람의 장점에 대해서 고래가 춤출 정도로 칭찬이 필요해요. 학교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교육학과도 관계되는데요. 지금 교육은 모난 부분을 깎아서 원만하게 해요. 결함을 교정시키죠. 그러면 안 됩니다. 그걸 포용할 수 있는 더 큰 원을 만들어, 그 안에 모를 넣어야죠. 큰 품성을 만드는 게 진정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니까요. 그 사람의 처지를 아울러 생각하고, 장점은 고래가 춤출 정도로 칭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도, 자기를 이해하는 것만큼은 못해요.
재미있는 일화를 하나 더 소개할께요. 변소를 다녀오며 한 밤에 문을 쾅 닫는 친구가 있었어요. 자전거 튜브를 가운데 끼워 꽉 닫히게 해놨는데도요. 시끄럽다고 아침마다 핀잔을 받았죠. 제가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데 왜 그래?’라고 물었더니, 답이 이래요. ‘제가 야간 주거침입을 하고 달아나다 축대위에서 떨어졌어요. 그래서 다리를 다쳤어요. 쪼그렸다 일어나면 완전히 마비가 돼요. 추운데 마비 풀릴 때까지 있을 수가 없어서, 늘 문을 놓치는거예요’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하는 말이 ‘어떻게 그렇게 세세한 것까지 이해를 받고 사나요. 그냥 욕먹고 살아야죠.’ 그러는 거에요. 대단히 훌륭한 사람이었죠.
춘풍추상(春風秋霜), 나에겐 엄격하게 다른 사람에겐 부드럽게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말이 있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춘풍처럼 부드럽게 하라는 말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정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하고요. 대신 나를 생각할 때는 추상같이 엄격하게 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요. 반대로 하죠. 다른 사람에겐 엄격하고 자기는 춘풍처럼 대하잖아요. 그 사람은 자기처럼 없이 살고, 부족한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을 갖고 있었던 거죠. 제가 그런 걸 보며 굉장히 많은 걸 배웠어요. 관계를 가질 땐, 내가 모르는 수많은 사연이 있겠다는 태도를 반드시 가져야 합니다.
정재승 : 마지막으로 감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만 여쭤보고, 질문을 받을께요. 선생님, 감옥에서 부르던 18번 노래가 있으셨다고요.
신영복 : 사실은 노래보다는 글을 썼어요. 같은 층 연구실 김창남 교수가 노찾사 창단 멤버였는데요. 노찾사 재기하며 책을 썼죠. 거기다 노래에 대한 얘기를 쓰래요. ‘노래가 없는 세월을 산 사람에게 무슨…’ 그랬는데 그래도 쓰래요.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거리가 있어요. 만기 출소 전에 영치금이 좀 남아 건빵 한 봉지씩 나누는 조촐한 만기파티, 가난한 만기파티가 있어요. 건빵 한 봉지씩 나눠받으면 훈훈해져요. 누군가가 노래 하나씩 하자고 해요. 내 차례가 오면 한사코 안하죠. 어쩔 수 없이 20년간 부른 노래가 ‘시냇물’이에요. 여러분도 다 아시죠. ‘냇물아 흘러서 어디로 가니, 강물 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정재승 : 음이... 어떻게 되죠?(웃음)
신영복 : 음은 안 해도 돼요. 우리세대는 노래에 대한 생각이 달라요. 우리는 가사 중심의 서사양식에 충실하게 들었죠. 전달이 어려우면 곡을 붙이고 그래도 안 되면 춤을 추고요. 그런데 요즘 ‘나가수’ 보면 조금 이상해요. 그렇게까지 온 몸을 던져서 부를 필요가 있나, 오버하는 게 아닌가 해요. 그러다 지금은 동작 하나하나가 작품이구나. 이게 퓨전이구나 해요. 당시엔 ‘시냇물’ 부를 때 마다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부분만 되면 숙연해졌어요. 처한 상황이 그렇다보니, 와 닿는 부분이었나봐요.
우리 시대 청년들도 감옥 밖의 재소자
인문학적 얘기를 하나 더 할까요. 출소하자마자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했어요. 종강파티를 했는데, 또 노래를 부르라고 해, 아는 게 시냇물 밖에 없어서 하면, 아이들 표정이 ‘넓은 세상’에서 재소자와 비슷하게 되요. 그때, 이 사람들도 갇혀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미셸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그런 말을 했죠. “감옥이란 밖에 있는 사람이 갇히지 않았다는 착각을 하게 하는 정치적 공간이다” 참으로 역설적인 말이죠. 우리 시대 청년들도 보이지 않는 감옥에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시냇물’은 참 인문학적 노래 같아요.
유정아 : 다 같이 시냇물을 부르면 어떨까요.
신영복 : 그래요.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강물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강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넓은 세상 보고 싶어 바다로 간다.” (박수) 같이 넓은 세상을 보기도 하고,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정재승 : 숙연해집니다.
유정아 : 정말 소리도 맑으시네요. 질문을 받겠습니다.
독자 1 : 만나 뵈어서 너무 반갑습니다. 감옥이나 귀향을 다녀오면 가장 큰 대학, 배움의 자리였다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0살 때부터 제 나이가 되는 마흔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모하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저희는 어떻게 하면 그런 큰 배움의 자리를 만날 수 있을까요.
정재승 : 감옥과 같은 배움의 대학! 굉장히 와 닿는데요.
유정아 : 보통의 젊은이들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공간 말이죠.
신영복 : 모두 깨닫죠. 저처럼 책을 쓰지 않을 뿐이겠지요. 감옥이 특별한 공간은 아닙니다. 밀집된 공간이기에 인간관계가 더 풍부할 뿐이겠지요. 도시는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으면 되죠. 감옥은 싫은 사람도 계속 만나야 하죠.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6.3사태 때 제가 써줬던 원고가 압수되어 울산 해변가에 숨어 있었어요. 한 달간 너무 무료해서 바닷가에서 파도를 봤죠. 자갈들이 길게 펼쳐져있어요. 모두 동글동글 다듬어져있었죠. 오래 보고 있다, 다듬어지는 과정을 깨달았어요. 파도가 들었다 내려놓으면 서로 막 부딪혀요. 그걸 수천만 년 했겠죠. 서로 부딪히고, 마모되며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거죠.
저도 학생들에게 그런 말을 해요. 선생이 뭔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여러분끼리 부딪혀 절차탁마하는 게 필요하다. 저는 감옥에서 책도 읽고 했지만, 가장 깨달음에 도움이 된 게 있다면 사람들에 대한 이해였던 것 같아요. 농밀한 인간적 관계에서 얻은 게 많습니다. 제 친구 후배 중 한 사람이 결혼 6개월 만에 감옥에 들어왔어요. 신부 같은 처를 두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거에요. 그가 ‘이번 달엔 제 처가 몹시 아파 접견을 못 온대요.’ 그래서 제가 ‘편지를 받았나요?’ 했더니 ‘보내온 옷에 향수가 두 배 이상 짙게 뿌려져왔어요’ 해요. 아파서 접견가지 못하는 마음을 향수의 양의 증가로 표현했다고 해요.
감옥살이에서 가장 큰 힘든 건, 개인의 고통이 아니에요. 그건 다 견딜 수 있어요. 자기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의 고통이 자기 아픔으로 건너와요. 짐을 질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이에요. 기쁨과 슬픔의 근원은 바로 ‘관계’에요. 책은 그저 관념적인 수준에 끝날 수 있어요. 적어도 가슴까지 내려오려면, 인간적인 만남을 통해 서로 부딪힘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사람과의 관계… 머리에서 가슴, 더 나아가 발까지 가야
독자 2 : 성신여대 4학년 학생입니다. 똘레랑스에 대한 부분,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저도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걸 신념처럼 믿고 살아왔는데요. 최근 유럽에서 다문화주의로 인한 테러, 분쟁을 보며 너무 협소하게 생각한 게 아닌가 했어요. 절대 악 같은 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하는 혼란을 느꼈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신영복 : 우리 시대에 없는 것들에 대한 고민이 있을 겁니다. 함께 하는 공감과 가치의 결핍을 느끼실 겁니다. 저는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가 참 많다고 생각해요. 제가 감옥에서 함께 했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가슴에서 했던 공감을 기초로 해서, 자기 반성이 더해졌다는 의미에요. 그런 노력이 꼭 필요해요. 우리가 사는 서울만 해도, 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그야말로 인간관계를 이루지 못하죠. 숲의 공간을 만들지 못하고 있죠. 감옥 10년쯤 살고 나면 다른 사람을 잘 판단해요. 죄목과 형기를요. 다른 사람에 대한 민감한 감각을 출소 이후에 잘 사용하는 곳이 바로 지하철에서 자리잡을 때에요.
저는 지하철을 탈 때, 누가 어느 역에서 내릴 때 거의 알아맞춰요. (웃음) 앉으려고 마음먹으면 언제든 앉을 수 있어요. 어느 날은 인천에 특강이 있어 가는데 영등포역에서 1호선을 탔어요. 자리가 없었어요. 신도림에서 내릴 사람을 찾는데, 바로 앞 사람이 일어나요. 바로 앉으려는데, 젊은 여자분이 내 앞에 빈자리로 옮기더니 자기 앉아 있던 자리에 친구를 앉히는 거예요. (웃음)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죠. 누가 보더라도 그 자리에 대한 권리는 제게 있었는데 말이죠. 불법적으로 그 자리를 가져가더라고요.
현대인들, 깊은 만남 없으니 관계 맺지 못한다
제가 『강의』란 책을 썼습니다만. 맹자가 인자하기로 유명한 왕을 찾아가 이런 소문을 확인했다고 해요. 제사 지내려는 소를 불쌍하다 놔주라고 한 적이 있냐고요. 그때 왕이 이렇게 말해요. ‘양으로 바꿔 지내라’고 했다고. 맹자가 묻죠. ‘소가 불쌍해 보여서인가요? 그렇다면 양은요?’ 소와 양을 바꾼 이유를 맹자가 이야기해요. 소는 죽는 걸 봤고, 양은 못 봤다는 겁니다. 즉, 만남과 관계가 있다 없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합니다. 전철에서 내 자리를 가로챈 사람은 나와 아무 관계가 없죠. 본 적도 없고 볼 일도 없는 사람이죠. 대부분 서울시민들이 그런 관계로 살고 있어요.
지하철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평균 탑승시간이 20분, 10정거장이에요. 그러니 자리를 불법점유를 하는 거죠. 3년간 함께 밥해먹고, 같이 산다면 그럴 수 없었겠죠. 그래서 관계가 중요한 거에요.
모스크바에서 비싼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거기 지하철이 유명하죠. 지하 150미터. 노인이 탑승하면 젊은이들이 모시고 자리에 앉혀요.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이렇게 말을 해요. ‘저 노인들이 청춘의 혁명적 정열을 바쳐 건설한 전철이니 당연히 양보해야죠!’ 우리 학생들에게 비슷하게 물어봤죠. ‘너희들이 타는 지하철, 지금 노인들이 젊어서 만든 건데 왜 양보를 하지 않니?’ 그랬더니 학생들이 칼 같이 대답해요. ‘노인들이 만든 건 맞지만, 봉급 받으려고 한 거지 우리와 무슨 상관이에요?’ 똑 같은 상황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을 볼 수 있죠.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 실상이기도 하죠.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공동체, 인간적 관계를 만들어가겠어요. 대단히 어렵죠. 그래서 제가 ‘작은 숲’을 만들자고 제안을 하는 겁니다. 바로 여기도 작은 숲일 수 있죠. 오신 분들이 비슷한 고민을 갖고 계실테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작은 약속을 했으면 좋겠어요. 꼭 물리적 공간이 아닐 수도 있고요. 작은 숲과 숲이 소통하는, 의식적인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걸 통해 우리 사회의 인식과 문화도 탈근대적인 것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싶어요.
관용으로 지속가능한 ‘숲’의 공간 만들자
정재승 : 저도 지금 질문한 학생과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극우단체 한 사람이 다문화행사에서 어린이들을 무차별로 살해한 끔찍한 사건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총을 겨누는 그런 사람들에게 우린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런 문제를 고민하게 되거든요. 결국 노르웨이 정부는 그 사건을 보듬고 더 큰 관용으로 보복하겠다고 했지요.
신영복 : 크게는 똘레랑스의 과정을 거쳐 공동체적인, 지속가능한 숲의 공간을 만들자는 게 합의되겠지만 그 과정에서는 여러 가지 선택적 정책 방향도 필요하겠죠. 한 가지 방법을 고집하긴 어렵겠죠. 다만 사회의 주류문화가 흔들리지 않는 방향성을 확보한다면 효과적인 결과를 거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재승 : 자연스럽게 요즘 이야기로 옮겨갈까 합니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가 겪은 일들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예컨대, 의회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 시민정치로 나아가려는 정치적 변화들이 있었고요. 최근 들어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조롱, 정부에 대한 풍자나 희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신영복 : 우리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어요. 웹 2.0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사회 주류 계층의 사고는 웹 1.0사고에 머무는 게 문제죠. 자기 서버를 많이 키우고, 더 강력한 서버에 접속하려는 거죠.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창의적인 서버로 나가려고 하는데 말이에요. 이렇게 서로 다르죠.
1623년 인조반정 이후로 지배계층의 성격 바뀐 적이 없다
최근에 너무 답답해서, 한국사를 다시 읽으니 이런 게 나와요. 1623년 광해군을 쫓아낸 인조반정 이후에 지배계층의 정치적 성격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조선 후기 내내 노론, 한일합방 때도 노론 권력체계였죠. 의회정치에 대한 실망이 많다는데, 우리 의회 구성을 보면 국민들의 구성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못되죠. 사법과 행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히 보수적이고 완고합니다. 또, 언론을 보세요. 거의 보수적인 기조를 갖고 있죠. 이런 상태에서 사회를 바꾸자고 하는 것보단 변방에서 새로운 모델을 가지는 게 좋지 않나 싶어요. 최근에 일어난 안철수 현상, 시민운동을 기반으로 한 서울시장의 당선 같은 건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험하고 있는 과정 같습니다.
정재승 : 그러면 대의민주주의, 의회정치에 대한 체질개선 없는 새로운 시민정치 형태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신영복 : 보수적인 구조가 일정하게 비판되면 그 자체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예를 들면 오히려 의회권력이 바뀌게 되면 국회의원 선거법부터 바꿀 수 있죠. 정당투표제를 병행한, 국민들의 구성을 반영할 수 있는 의회도 만들 수 있겠죠. 밖에서 새롭게 일어나는 여러 운동들이 그런 압박이 될 수 있죠.
정재승 : 문제는 기득권자들이 정당투표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게 아닐까요.
신영복 : 그래서 저는 객관적 조건은 굉장히 완고한데, 바꾸려는 주체역량은 대단히 취약한 상태라고 봅니다. 비대칭적인 힘의 대치상태가 실상이라고도 보는데요. 다만, 이런 상황에선 전혀 다른 전략, 전술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대응방식이 있으니까요. 난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신뢰합니다. 가능성이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유정아 : 정치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다른 사람들을 타자화시키는 근대성까지 바꿔줄 수 있다고 보시나요.
신영복 : 쉽지는 않겠죠. 『놀라운 가설』의 저자 프랜시스 크릭은 내 머릿속에 있는 ‘나’라는 게 뭔가 고민했는데요. 모든 보수성의 기본적인 출발점이죠. 인지과학, 뇌과학에 의하면 한 존재는 다세포로 발전하며, 자기 생명을 여러 기관과의 관계성을 통해 증명한다고 해요. 우리 역사가 근대사라는 존재론적인 패러다임을 갖고 왔기 때문에, 나의 관계론적 본성 자체가 잘못 굳어져온 측면이 있습니다. 그걸 바꿔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분명히 있어요.
정재승 : 혹자들은 『놀라운 가설』을 두고, 놀랍지도 않은 가설을 놀랍다고 주장한 책이라고도 했는데요. 선생님 말씀 듣고 나니 놀라운 얘기를 담고 있네요. 또 한 수 배웠습니다. (웃음)
대학은 백년 뒤를 예비하는 미래담론을 창조해내는 공간
유정아 : 페이스북을 통해 올라온 질문도 받아볼까요. ‘고판동네’라는 아이디가 올려주셨습니다. “꿈의 의미가 비틀어지고,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있고, 클럽이나 도서관에 박혀있는 대학생들, 본인의 일 외에는 관심도 열정도 없는 젊은층이 깨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신영복 : 정재승 교수가 한 번 답해주세요.
정재승 : 세상을 너무 책으로 배우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사실, 많이 받는 질문입니다. 학생들이 학교 교육에 충실한데, 그걸 수행한다고 답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죠. 놓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기도 하지만요. 사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지도를 쥐어주고, 목적지까지 가장 빨리 가는 법을 계속 훈련시키는데요. 정작 필요한 건,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지도를 그리는 일이거든요. 어떻게 둥지를 틀어야 하는지도요. 세상과 부딪히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학교가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나 물어보게도 됩니다. 요즘 대학들이 인지적으로라도 대학생들을 가두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신영복 : 일생 중 가장 중요한 시기가 청년시절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청년시절이 없는 것 같아요. 학원이나 교실에서 시험, 취업준비만 하니까요. 꿈과 이상을 불태우는 청년시절이 없다면 그의 인생은 사회적 기준에서 아무리 성공했다 해도, 실패했다고 봐요. 마찬가지로 한 사회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의 대학공간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스펙만 쌓아서 기업에 부품 납품하는 대학이 아닌, 그 사회의 백년 뒤를 예비하는 그런 미래담론을 창조해내는 대학 본연의 공간이 없다면. 한 개인이 청년시절이 없는 것과 똑같습니다. 청년들의, 한 사회의 비극입니다.
한 학생이 와서 시민운동단체에 가서 일을 하고 싶다고 해요. 그런데 엄마가 반대를 한다는 거예요. 주변 사람들이 알 만한데 취직을 하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내가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엄마와 대화를 해라, 커피빈 같은 커피숍에서 마주 앉아 정식으로 대화를 해라. 그러면 모든 엄마는 다 네 편이다’ 그랬어요. ‘주변 사람들 때문에 꿈과 이상을 접어서야 되겠나요. 힘들지만 좋아하는 일을 위해 살면 안될까요’ 이렇게 정식으로 대화하라고 했어요. 실제로 그렇게 해서 성공했답니다.
모든 엄마는 자식 편이다. ‘정식으로’ 대화하라
모든 어머니들이 다 그럴거에요.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아서 그렇죠.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보면 ‘산티아고’라는 목동이 갖고 있는 게 별로 없죠. 가죽물푸대와 무화과나무 밑에서 펼치고 잘 담요 한 장, 책 한 권, 그리고 양떼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죠. 마지막엔 무화과나무 밑에서 보석상자를 캐내죠. 그때 독자는 묻게 됩니다. 연금술이 실제로 있다는 건가? 코엘료가 말하는 연금술은 바로 이런 거죠. 삶에서 겪는 고난의 긴 여정이, 매 발자국 그 순간순간이 황금의 시간이라는 거요. 그게 바로 소설이 보여주는 연금술 같아요.
소유하고 소비하며 만족을 느꼈던 문화, 분명 달라질 수 있어요. 지금 젊은 사람들은 대단히 경쾌해요. 노인들이 뭘 많이 가지려고 해서 문제죠. 전 그런 변화된 정서를 신뢰합니다.
유정아 :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인용하자면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판을 새로 짜보시면 어떨까요. 독자 우종훈님이 물어보셨습니다. “선생님을 좌파지식인이라고 하는 기사를 봤는데 어떠신지요.”
정재승 : 좌파세요? (웃음)
좌우, 진보보수처럼 분석하고 나누는 것은 근대성의 일면
신영복 : 좌우, 진보보수. 분석하고 나누는 것도 근대성의 일면입니다. 그걸 뛰어넘기 위해서 ‘경계’라는 표현도 나옵니다. 누가 나한테 ‘경계에 선다’고 해요. 저는 그게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요. 경계는 좌와 우를 나눈다는 전제하게 나오는 말이니까요. 명백하게 구분되어 있는 건 아니죠. 잘못된, 불운한 역사 때문에 좌와 우가 소통하는 게 아니라 ‘소탕’하고 있어요. 우파로부터 좌파라고 공격당하기도 하는데요.
누가 저한테 이렇게 말해요. 이승만 아니었으면 북한처럼 될 뻔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이승만 단독정부 수립 때문에 400만명이 죽었다.’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어요. 그때 더디더라도 통일된 정부를 만들었다면 지금 아시아의 스위스 정도는 되어 있지 않을까. 프랑스처럼 좌우가 상생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해요. 사실 좌우라는 것, 극단적으로 나뉘지 않는 거예요.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죠.
이론은 좌, 실천은 우로 공존해야 한다
정재승 : 구체적으로는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을 지지하시죠?
신영복 : 그 문제는 겉으로 보기엔 좌와 우의 옷을 입고 다투지만, 사실은 경제적 이해관계 때문이라고 봐요. 무상급식하면 ‘돈 더 내지 않을까’ 이런 게 핵심이죠. 그런데 이런 문제는 가려지고 좌우로 치환돼서 나타납니다. ‘좌’라는 것은 조금 불편하지만 뭔가 현 단계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가치지향을 하자는 거고. ‘우’라는 것은 현재의 모든 생명을 따뜻하게 지키자는 겁니다. 둘 다 좋은 거고, 공존해야 하는 거죠. 이론은 좌경, 실천은 우경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정아 : 김재형, 우선영님이 주신 질문 이어가볼까요. 저희도 가졌던 의문이기도 한데요. “다른 사람에게 공감, 관용을 베풀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요. 상대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면서 본인도 에너지를 잃지 않고 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요.”
신영복 : 적절한 일화인지는 모르겠지만요. 교도소엔 단기수와 무기수가 있어요. 단기수는 만기일만 기다리죠. 무기수는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이죠. 그들의 정서는 고진감래 끝에 뭔가 아름다운 성취가 있을 거라는 패러다임이 필요해요. 한 걸음 한 걸음이 다 황금의 시간이에요. 그 길 자체를 견딜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제가 ‘길의 정서를 갖자!’고 해요. 삶이란 무엇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죠.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하는 일 자체가 아름답고 보람 있는 자세로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길의 정서로 가자고 말하는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가다가 코스모스, 사람도 만나고 발자국도 남기며 그 자체로 동력과 자체를 이끌어 가는 거죠. 그런 일하는 자세를 갖는 게 필요하겠죠. 커다란 과제이기도 합니다.
유정아 :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의 정서’ 오늘 담고 갈 키워드 중에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우선영님이 정재승 교수께 질문 주셨네요. “트윗을 보면 강의에 연구,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하는데, 그 에너지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머리가 워낙 좋아 처리속도가 빨라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는 건가요.”
정재승 : 머리 좋은 거 맞고요. (웃음) 흉내 내려 하지 마세요. 다칩니다. (폭소) 사실, 주변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거기서 에너지를 받아요. 도와주고 싶고 참여하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계속되어 왔어요. 남들이 안하는 걸 해보는 걸 두려워하거나, 벽은 없는 것 같아요. 관계와 소통 말씀하셨는데요. 저에게도 소통의 욕망이 강해요. 사람들이 그 과정에서 기뻐하면 저도 그 관계 속에서 저를 찾는 것 같아요.
유정아 : 저도 학교에서 말하기를 10년 정도 가르쳤는데요. 처음에는 모교에서 강의했어요. 그러면서, 나는 이 학교 몇 학번이야 이렇게 말했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어느 학기부터는 그런 말을 안 했어요. 몇 학번이라고 했더니, 어떤 학생이 ‘어머 그러면 몇 살이야?’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고 나서였죠. 더 이상 같은 세대가 아닌, 젊은 선생님이 아닌 것 때문에 위축된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세대 간의 폭을 좁히려고 노력을 많이 하시잖아요.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요.
‘여럿이 함께’ 하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
신영복 :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들이 버릇없다!’고 하면 제가 이렇게 말해요. ‘당신은 다 살지 않았나. 다음 세상 만들 젊은이들이니 그냥 지켜보라’고 해요. 누가 뭐라고 한들, 젊은이들이 스스로 포맷하고 만들어가야죠. 제가 붓글씨를 잘 써요. 출소하고 사회단체들이 기금 마련전 한다고, 찬조작품 내라고 해서 ‘여럿이 함께’를 썼어요. 궁체와도, 훈민정음 판본체와도 다르다고 사람들이 말해요. 그런데 어느 후배교수가 와서 “‘여럿이 함께’ 참 좋은데, 그건 방법론만 말하고 목표지향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지적을 해요. 그 후로 제가 ‘여럿이 함께 가면 길은 뒤에 생겨난다’고 써요.
지금까지 우리는 계몽철학이든, 신학질서든 어디로 갈 건지, 어디로 갈 건가만 고민했죠. 여럿이 함께, 그 사람들이 결정해야 하는거에요. 뭔가 자기들끼리 시행착오하면서 가면 길이 생기는 거죠. 선험적으로 갖고 있는 건축적 의지를 허무는 게 필요해요. 여러분들의 역량만큼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앞으로의 세상을 위해서요. 저는 전적으로 신뢰하는 게 옳다고 생각해요.
시행착오하면서 선험적인 건축의지 허무는 게 필요
유정아 : 벌써 2시간이 흘렀네요. 정재승 교수님,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재승 :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으면 김제동씨에게 상담을 받아요. 그때마다 ‘제가 겪은 일의 천분의 일 정도 되는 고통이네요. 악플 20만개 받아봤어요?’라고 하는거에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제 삶으로 돌아오게 돼요. 감옥 말씀하실 때는, 너무 좋은 이야기고 겪으신 것들이 엄청난 일이라 과연 내가 범접할 수 있는 경지인가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더 이야기가 지나가면서 선생님 매력에 빠진 것 같아요. 관객들과 같은 위치에서 몰입했어요. 너무 많은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깨우쳐주는 구도 없다. 각자의 그림이 있을뿐.
신영복 :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늘 제가 이야기를 하는 입장이었거든요. 사실, 이야기하고 듣고 가르치고 배우고 하는 구도는 누군가 아는 사람이 누군가 모르는 사람에게 깨우쳐주는 구도는 없습니다. 모르는 건 아무리 얘기해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해요. ‘내가 아는 이야기는 내가 겪은 사진을 보여주는 겁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앨범에 비슷한 사진을 뽑아서 보시면 됩니다.’ 모두 아는 이야기라는 거죠. 감옥만 감옥이 아니라, 처하고 있는 상황은 비슷합니다. 내가 보여드리는 그림, 여러분이 갖고 있는 그림이 공감하는 거에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면서요. 작은 약속도 하고요. 그게 바로 이런 자리가 아닌가 합니다.
두 분 도와주시고, 질문도 해서 쉬울 것 같았는데 조리가 없었던 것 같아요. 제 자신도 정리가 안 되는데 여러분도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걱정도 됩니다. 돌아가서 다시 정리하세요. 앨범에 있는 사진들 꺼내보면서요. 명시적이진 않지만 서로가 작은 약속을 했다고 생각해요. 살아가는 삶의 골목에서 작은 것들을 만들어내는 노력을 지금부터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유정아 : 오늘 애써주신 신영복 교수님, 정재승 교수님께 다시 한 번 뜨거운 박수를 주시면서 마치겠습니다.
[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댓글 이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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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12월 09일 ~ 2012년 1월 1일
발표 2012년 1월 6일(희망의 인문학 캠페인 공지사항 게시판)
결혼은, 미친 짓이다
그 어떤 소설보다 슬픈 소설같다.
내 선택에 대한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동거동락해야 할 일인데...
정말 결혼은, 미친 짓 인것인지...
연락.. P.37
「산다는게 참 우스워」내가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정작 너 자신은 까맣게 기억 못하는 일을 내가 기억하고 있잖아. 그리고 넌 또 내가 기억 못하는 나를 기억하고. 저번에 네가, 성환이 자취방에서 내가 쉴 취해서 운 적 있다고 했잖아. 그런데 나는 정말로 그런 기억이 없어」
「벌써 이십 년 전이니까!」
「더 우스꽝스러운 건」 나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으며 말을 이었다.「자기 자신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그러니까 자신이 지금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자기 자신조차 오해를 하고 있거나 잘 모른다는 거야. 가령 은희는, 그때 내가 왜 저를 싫다고 하다가 갑자기 만나 줬는지 그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을 거야」
「하하. 그렇겠네」규진이 바지춤에 손을 넣으며 나란히 걸었다.
「그런 일들은 정말 비일비재해」
분화구.. P.63-64
영화가 끝났다. ...
「스테이크 어때요?」그녀가 걸음을 멈추며 물었다.
「영화를 보여줬으니까 저녁은 제가 살게요」
「그러세요」
레스토랑보다는 소주가 당겼지만, 잠자코 뒤따랐다. ...
스테이크와 함께 맥주를 시켰다. 어쩌면 하고 나는 다시 생각을 이어 나갔다. 서른을 넘긴 평범한 인생이란, 시나리오는 이미 다 씌어져 있고 다만 배역을 캐스팅하는 일만 남은 나이인지 모른다. 그녀 말대로, 그것이 비록 뻔히 내다보이는 상투적 레퍼토리일지라도 배역이 누구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질지 모른다는 기대만 남아서, 이렇게 만나보고 있는 건지도. ....
탤런트 P.101-102
「뭐든 이런 식으로 말하면 되는 거야. 가령, 그 집애가 공부도 지지리 못해 속상해하는 부모에에겐, <그 집애는 건강해서 좋겠어요>라고 인사하는 거지. 또, 그 집 애가 너무 못생겨 보이면 <그 녀석 장군감이네> 하면 되는 거야. 싸가지 없어 보이는 애의 부모에겐 <애가 참 발랄하네요>하면 되고」
그녀가 키득댔다.
「그리고, 장사꾼이 <이거 본전치기도 안 돼요>라고 말하면 <바가지 씌우려고 했는데 봐주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세요>라는 뜻으로 들으면 되고 정치가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열심히 해먹겠습니다>라는 얘기로 알아들으면 돼, 세상은 다 그 따위라고... 」
「하긴, 친구들 결혼 생활 보면 다 고만고만한 걱정과 즐거움에 갇혀서 살아. 그들이야말로 마치 체인점 차린 것 같다니까」
「그렇다니까! 그건, 내면 연기가 전혀 필요없는, 얼굴만 어느 정도 예쁘면 누구나 조잘대며 할 수 잇는 우리나라 연속극 수준밖에 안 돼」
앵무새... P.229
「산중 암자에 덕망 높은 노승이 살고 이었대. 도를 깨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먼 길을 마다 않고 그를 찾아와서 <도대체 도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으면 그 노승은 다만 웃으면서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어.
그런데 그 노승이 얼마 동안 암자를 비우고 출타를 해야 했어. 그래서 노승을 모시는 동자승만 남아 암자를 지키고 있었는데, 하필 그때 어떤 사람이 아주 먼 길을 걸어 노승을 찾아 왔지. 동자승은 그를 그냥 돌려 보내기도 미안해서 <저에게 물어보시면 제 스승님의 방식대로 대답을 해드리지요> 했어. 그래서 그가 <그래, 그대의 스승은 도가 무엇이라고 하던가?>하고 묻자, 스승이 평소 하던 대로 엄지손가락을 딱 들어보였어. 이일에 재미를 붙인 동자승은 객이 찾아와 도에 대해 물을 때마다 그렇게 답해 주었지. 그리고 나중에 노승이 돌아오자, 동자승은 일의 앞뒤를 신이나서 떠벌렸지.
그러자 노승이 화를 내면서, <고약한 놈, 버르장머리 없이 함부로 스승의 흉내를 내다니!>하면서 칼로 동자승의 엄지손가락을 잘라버렸어. 동자승은 노승의 지나친 반응에 혼겁을 했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래서 암자를 내려갈 생각으로 짐을 꾸렸어. 그런데도 노승은 <잘 가거라> 한마디 할 뿐, 동자승을 달래거나 붙잡지 않았지.
마침내 동자승이 서운한 마음에 울먹이면서 암자를 내려가는데, 노승이 <동자야!>하고 부르더니 묻더래. <그래, 도란 무엇이더냐?>
동자는 습관대로 문득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려고 했지만, 그러나 자심의 엄지손가락은 이미 베어져 버린 뒤여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어. 그리고 바로 그순간 도가 무엇인지를 깨칠 수 있었대.」
"(2000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민음사)결혼은, 미친짓이다-이만교 장편소설"벌써 10년 전에 출판된 도서이지만 소설속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글쎄... 사회의 개방성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소수에서 다수이건, 미친 짓이라는 결혼을 하여 정말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다수에서 소수라는 비율의 변화는 늑대같은 남자, 여우같은 여자라는 인간의 본성이 그닥 많이 달라지지도 다르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인간의 다른 여러 본능적인 부분 중에서도 육체적 욕망에 대해서만 잣대를 들이 댄것은 아니였나란 생각이 든다.
결혼에 대한 환상이건, 순수하게 사랑하는 척하는 위선자들이 건, 미친 짓을 하기 전부터 자기만의 색을 갖고 가치관에 흔들림이 없다면 결혼, 그 미친짓을 잘 풀어 갈 수 있을 듯 싶다.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이 찌질이들과는 다른 삶의 방식으로 말이지...
영화라도 나왔다고 하던데..
영화는 어떻게 풀어 내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의 가치는 멋있다고 표현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다.
건축은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의 사고 구조를
우리가 사는 방법을 통하여 보여 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
건축은 인간정신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작업이다.
건축은 벽돌과 콘크리트가 아니라 인간정신으로 이루어 진다.
건축을 음미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실제로 건물을 보고, 그 속을 거닐어 보는 것이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라는 서명처럼
보이지 않은 이야기가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눈뜨게 되었다.
딱딱한 석조양식 풍이 아닌 목조양식의 따뜻함이 느껴지도록 서술된 건축이야기.
앞으로 건축, 건물 보는 것이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을 듯 싶다. ^^
출처 :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 서현
아침 꽃을 저녁에 줍다.
완전한 절망, 완전한 희망 - 페어 플레이는 아직 이르다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는다>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말아야 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때려야 한다는 것이다. ...
물에 빠진 개를 때릴 것인지 말것인지는, 우선 그 개가 땅에 올라온 뒤의 태도를 보아야 한다.
개의 본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으면 도리어 개에게 물린다. 이는 순진한 사람이 고생을 사서하는 꼴이다.
속담에 <무던하다는 것은 무능과 통한다>는 말이 있다. 물에 빠진 개는 때리지 않는다는 말만 보더라도 이 말이 생긴 데는 두가지 원인이 있다 할 것이다. 하나는 때릴 힘이 없는 것이고, 하나는 비교의 착오다. 전자는 논외로 하고, 후자를 살펴 보자. 그 착오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실각한 정객을 물에 빠진 개와 동일시하는 점이고, 둘째는 실각한 정객 중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가리지 않은 점이다. 이렇게 동일시한 결과 도리어 악을 만연시키고 있다.
현재는 정국이 불안하여 일어섬과 넘이짐이 마치 돌아가는 수레바퀴와 같이 급전하고 있다. 빙산에 의지하여 거리낌 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악인이, 일단 실각하면 곧바로 동정을 애걸한다. 이리되면 남이 물리는 것을 직접 보았거나 자신이 직접 물리기도 했던 순진한 사람들은, 그를 물에 빠진 개와 동일시하여 때리지 않으려 한다. 더 나아가 측은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정의가 이미 이겼으니 이제는 의협심을 보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 그가 다시 나오면 이전처럼 맨먼저 순진한 사람을 물게되고, 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등 못하는 짓이 없게 된다.
그 원인을 찾자면 순진한 사람이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은 데한 원인이 있다. 때문에 좀 가혹하게 말하자면, 스스로 제 무덤을 판것이니 하늘을 원망하거나 남을 탓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다.
....
만일 일률적으로 페어플레이를 적용하여, 그는 당신에게 페어하지도 안흔 데 당신만 그에게 페어했다가는 결국 자신만 손해를 보게 된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는 페어하려 해도 할 수 없고, 페어 안하려해도 안할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페어플레이를 하려면 먼저 상대를 똑똑히 보고, 페어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라면 조금도 페어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 상대가 페어하게 나온 다음, 그에게 페어해도 늦지 않다. ....
그러므로 페어플레이 정신을 일반화시켜 실시하려면, 적어도 물에 빠진 개들이 인간다워진 다음에 해야 한다. 어떻게 물에 빠졌든 상대가 사람이라면 건져야만 하고 개라면 내버려 둬야 하며, 나쁜 개라면 때려야 한다.
2011 노벨문학상 트란스트뢰메르의 시 세계
- 비가(悲歌)
그가 펜을 치웠다
펜이 탁자 위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펜이 텅 빈 방에서 조용히 쉬고 있다
그가 펜을 치웠다
쓸 수도 침묵할 수도 없는 일들이 이토록 많다니!
멋진 여행가방이 심장처럼 고동치지만,
그의 몸은 먼 곳에서 일어나는 무슨 일로 뻣뻣해진다
밖은 초여름.
초목에서 들려오는 휘파람 소리. 사람인가 새인가?
꽃 핀 벚나무가 집에 돌아온 짐차를 껴안는다.
몇 주가 지나간다
밤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방들이 창유리에 자리 잡는다
세상이 보내온 조그만 창백한 전보들.6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스웨덴의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사진)는 스웨덴에서 ‘국민시인’으로 사랑받는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자 북유럽의 대표 시인이다.
1931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언론인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나 린쇼핑, 베스테로스 등에서 심리상담사로 활동한 그는 13살 때부터 글을 썼고, 스물셋이던 1954년 스톡홀름 앞바다의 수많은 섬을 보고 받은 인상을 우주적인 관점에서 묘사한 시집 ‘열일곱편의 시’로 데뷔했다. 1958년 여행 경험을 담은 ‘길 위의 비밀’을 출간한 것을 비롯해 ‘미완의 천국’(1962), 유년시절의 기억을 소재로 한 ‘발트해’(1974) 등 7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10여권의 시집을 출판했다.
50여년에 걸쳐 발표한 시의 총 편수는 200편 안팎으로 1년에 평균 네댓 편만을 쓸 정도의 ‘과묵의 시인’이었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시류에 흔들림 없이, 꾸준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시작을 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고요한 깊이의 시’ 혹은 ‘침묵과 심연의 시’라고 평가받는다.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스웨덴 자연시의 토착적이고 심미적인 전통과 함께 세계 문학사적으론 모더니즘 전통과의 연관 속에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그가 모더니스트 시인 에릭 린데그렌과 1940년대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잠과 깨어남, 꿈과 현실, 혹은 무의식과 의식 간의 경계 탐구가 그의 시에 주로 나오지만, 초기 작품에서는 잠과 깨어남의 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 전도돼 있다. 초기 시에서 깨어남의 과정이 상승 이미지로 그려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강 및 낙하의 이미지로 제시돼 있기 때문이다. 하강의 이미지 주변에는 물과 불, 녹음(綠陰)의 이미지 등이 밀집돼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미지 구사의 귀재, 혹은 비유적 언어 구사의 마술사라는 평을 듣는 이유다.
중기 작품은 세상 혹은 자연세계에 대한 면밀한 관찰과 깊은 사색에서 배태된 자유분방한 상상력이 주요한 동력이 된다. 이 같은 자유분방함은 기독교 신비주의의 차원과 긴밀히 연관된다. 그는 그래서 한때 “종교적 경사가 심하고 정치사회적 맥락이 거세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눈앞의 정치현실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란스트뢰메르는 비판에 대응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길을 꿋꿋이 걸으며 ‘침묵과 심연의 시’를 이어갔다. 자연과 삶에 대한 세밀한 관찰력을 담고 있는 동시에 문체를 지극히단순화시키면서도 의미를 더욱 풍부하게 드러낸다. 마치 기억의 숨소리마저 들려주는 이런 시처럼.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 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 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 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 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 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 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 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기억이 나를 본다’ 전문)
사실 그의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나름의 정치·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즉 정치적으로 급진도 반동도 아닌 제3의 길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전반적인 중용의 인생관, 혹은 ‘침묵과 깊이의 인생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는 그래서 ‘100퍼센트’라는 표현을 혐오한다. 진실은 100퍼센트와 0퍼센트 사이의 어느 지점에 숨어 있어 그 길을 올곧게 따라가는 게 ‘똑바로 선 인생’이 된다.
스웨덴 사람들은 그에게 ‘말똥가리 시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말똥가리처럼 높은 지점에서 세상을 일종의 신비주의적 차원에서 바라보되, 지상의 자질구레한 세목에 날카로운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따라서 ‘꼼꼼한 거시주의’ 혹은 ‘거시적 미시주의’가 그의 특징적인 시의 방법이 된다.‘기억이 나를 본다’ 시집 표지
그는 지금까지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등도 포함돼 있다. 그의 시는 미국의 로버트 블라이, 영국의 로빈 풀턴 등 많은 영어권 시인들에 의해 번역되는 등 지금까지 50여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시인 고은씨가 책임편집한 ‘오늘의 세계 시인’ 시리즈 중 하나로, 2004년 트란스트뢰메르가 선정한 96편의 시를 담은 ‘기억이 나를 본다’가 출간된 바 있다.
트란스트뢰메르는 1990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지금까지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전통과 현대, 그리고 예술과 인생의 빛나는 종합을 성취한 시인, 자연과 초월과 음악과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김상열 한국외대 스칸디나비어과 교수는 “트란스트뢰메르의 시는 핀란드 및 북유럽 신화를 모티브로 집필 되어 심오할 뿐 아니라, 본인이 피아니스트인 만큼 음악성도 뛰어나다”며 “세계적으로, 특히 영미권과 게르만어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용출 기자 kimgija@segye.com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연보
●1931년 4월 15일=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출생. 아버지는 저널리스트, 어머니는 교사
●1931∼1940년대=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 밑에서 성장
●1954년=‘열일곱 편의 시’로 데뷔. 미국의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 등과 교류. 후일 스웨덴어로 된 시가 영어권으로 번역되는 계기가 됨
●1956년=스톡홀름대에서 시, 심리학, 종교사학, 역사학 수학
●1958년=시집 ‘길 위의 비밀’ 출간
●1960∼1966년=린쇼핑, 베스테로스 등 스톡홀름 인근 지방에서 심리상담사 활동. 청소년범죄자 대상 심리상담사 역할을 함
●1990년=뇌졸중으로 쓰러짐. 반신불수와 말을 할 수 없는 건강 상태에도 불구하고 시작과 시집 출판을 지속함
●1993년=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
●1996년=시집 ‘슬픈 곤돌라’
●2004년=시집 ‘위대한 수수께끼’. 2년 뒤 영어로 번역 출간
●2011년=노벨문학상 수상
■수상
독일 페트라르카 문학상, 보니어 시상(詩賞), 노이슈타트 국제 문학상 수상빗속의 나무 한 그루가 이리저리 거닐고 있다.
우리를 지나 쏟아지는 잿빛 속으로 질주한다.
나무에겐 해야 할 일이 있다. 과수원의 지빠귀처럼
나무는 빗속에서 생명을 거두어들인다.
비가 멈추자 나무도 멈춘다.
나무는 맑은 밤 조용히 서서
천지사방 눈송이 꽃피어나는 그 순간을
꼭 우리처럼 기다린다.
- 나무와 하늘 -유월의 어느 아침, 일어나기엔 너무 이르고다시 잠들기엔 너무 늦은 때.밖에 나가야겠다. 녹음이기억으로 무성하다, 눈 뜨고 나를 따라오는 기억.보이지 않고, 완전히 배경 속으로녹아드는, 완벽한 카멜레온.새 소리가 귀먹게 할 지경이지만,너무나 가까이 있는 기억의 숨소리가 들린다- 기억이 나를 본다 -
비계(飛階)
석공들은 집을 짓기 시작할 때
꼼꼼하게 비계를 점검한다
널빤지가 복잡한 곳에서 빠지지 않도록 확인하고
사다리를 남김없이 고정하고 이음매의 나사를 조인다
하지만 일이 끝나면 이것들은 다 철거된다
돌로 쌓은 단단하고 믿음직한 벽을 과시하면서
그러니, 그대여, 때로 당신과 나 사이의
다리가 낡아 무너지는 것처럼 보여도
두려워 말라 우리는 집을 다 지었기에
그저 비계만 허물어뜨리는 것이니
- 비계(飛階) - (쉐이머스 히니)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
참 이상하지. 살면서 우리는 가끔 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때가 있고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때가 있어. 이둘을 구별할 수 있다면 프란치스코의 말대로 '지혜'를 얻는 일이 되겠지. 그런데 이세상은 말이야.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야 할 때를 훨씬 더 많이 준다. 소풍 가는 날 나빠지는 날씨하고, 나 싫다고 가는 사람하고, 엄마랑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네 마음하고, 어떤 때는 그걸 견뎌야 하는 내 마음까지.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일은 내 마음을 어떻게든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것, 기다려 주기, 따듯하게 말해 주기, 너에게는 너만의 고유한 상황과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주기, 그러니 말하자면 네 마음이 이럴까 저럴까 억지로 (결국은 정확하지도 않을 꺼니까)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책이라도 들여다 보거나, 훌쩍 가방을 들고 수영하러 가기.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같이 근무하는 직원에게서 실망하는 모습들을 보고 내가 실장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이 흔들린다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아픈건 무엇일까?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겠지라는 생각은 나만의 잘못된 생각일까?
서로 불편함으로 인해 상처 받는 내 모습이 어직 덜 자랐는지 안타까운 마음 뿐이니..
무조건 감싸거나 웃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직장생활에서 지켜야할 기본에 대해 알려줘야 하는지..
진심은 통할꺼라는 내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지만 기본이 어긋난 관계에서 힘겨움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요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친 내 탓이 더 컸을런지도?
그 동안 미뤄온 필라테스를 시작해 볼까?
그 것을 시작하는 날이 모두를 위한 평화를 부르는 날이 될꺼라 기대하며?!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일은 내 마음을 어떻게든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것, 기다려 주기, 따듯하게 말해 주기, 너에게는 너만의 고유한 상황과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주기, 그러니 말하자면 네 마음이 이럴까 저럴까 억지로 (결국은 정확하지도 않을 꺼니까) 생각하지 말고 조용히 책이라도 들여다 보거나, 훌쩍 가방을 들고 수영하러 가기.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같이 근무하는 직원에게서 실망하는 모습들을 보고 내가 실장으로 대접받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이 흔들린다는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아픈건 무엇일까?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겠지라는 생각은 나만의 잘못된 생각일까?
서로 불편함으로 인해 상처 받는 내 모습이 어직 덜 자랐는지 안타까운 마음 뿐이니..
무조건 감싸거나 웃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직장생활에서 지켜야할 기본에 대해 알려줘야 하는지..
진심은 통할꺼라는 내 믿음이 흔들린 적은 없지만 기본이 어긋난 관계에서 힘겨움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요즘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지친 내 탓이 더 컸을런지도?
그 동안 미뤄온 필라테스를 시작해 볼까?
그 것을 시작하는 날이 모두를 위한 평화를 부르는 날이 될꺼라 기대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다.
불안하니까 청춘이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다.
글쎄...
내 나이를 청춘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인생 앞에 홀로선 사람은 맞는데... 젊은 청춘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참 그랬었지라며 공감도 하고 다시 다짐도 해보게 된다.
이직을 하고 적응을 한다고 생각이 많은 내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 생활을 얼마나 해 보았다고 벌써부터 내 잣대를 들이대냐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첫 직장이 아니라 마지막 직장이라고 말이다.
첫단추가 좋아야 세상살이가 쉽다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속물이었나 싶다.
이 책은 인생에 관한 종합선물셋트같은 젊은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산타같은 란도샘이야기다.
많은 이야기 중에 "이별, 그 후"의 편지 부분은 내 청춘의 편지가 내게 회송된 글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사랑은 풋풋했었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한없이 이기적이지 않았었냐고 내게 되묻는다.
P.145 결국 그 사람이 왜 너를 떠났다고 생각해? 서로 너무 달라서? 그 장벽을 뛰어넘기에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어차피 맺어질 수 없는 게 너무 분명하니까 지금이라도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 아니면, 결국 너를 사랑하니까?
난 그렇게 생각안 해. 그 사람이 너를 떠난 건, 네가 충분히 갖지 못한 '그 무엇'때문이야. 그가 내심 기대했지만 너는 충분히 줄 수 없었던 '그 무엇.' 그러면서 실은 한 번도 네게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던 '그 무엇.'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떠났어.
...
이렇게 네가 무너진다고 해서 그 사람, 다시 돌아오지 않아. 혹시 기회가 오더라도 그와는 다시 만나지 마.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언제가는 똑같은 일을 다시 겪게 될 거야. 아까 이야기한 '그 무엇'을 네가 갖추기 전까지는.
'그 무엇'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갖출 수 없는 것일지라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 '그 무엇'이란 무척 상대적인 것이거든. 네가 언젠가 만날 다른 어떤 사람에겐, 지금 네가 가진 그것이 너의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어.
그는 너를 사랑하기에 떠난 것이 아니야. 너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기에 떠났어. 이기적인 사람이지. 하지만 너무 원망하거나 욕하지는마. 우린 모두 이기적이 잖아. 하지만 누군가, 서로에게 이기적이고 싶지 않게 되는 사람이 저 거리 어딘가에 분명히 있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다만 이번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뿐.
.....
난 정말 그런거 같다. 늘 이기적이었다. 이기적인 행동은 물론, 이제까지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해주지 못했으니... 그는 늘 나를 위한 행복을 빌어 줬었는데 말이다.
헌데, 이기적인 그 결정을 내릴때, 나는 왜 내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이니깐, 내가 볼 수 있는 것일까?
조지 버나드쇼가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는 아깝다고 했던 말처럼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이니까 그 것들이 보여지는 것인가?! 나의 부족함을 탓하기 이전에 상대에게서만 받으려고 했던 나의 이기심..
오늘 밤, 참 많은 생각이 스친다. 더욱 미안해진다. 그리고 내가 작아진다.
그래도, 그래도 나보다 멋지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것인지...
그게 다 내덕이라고, 멀리서 그 행복 영원하라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날 위로해 본다. 외쳐본다.
이 역시 이기적인 생각으로 말이지... ^^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청춘이다.
그러니까 청춘이다.
글쎄...
내 나이를 청춘이라 말할 수 있을까?
인생 앞에 홀로선 사람은 맞는데... 젊은 청춘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참 그랬었지라며 공감도 하고 다시 다짐도 해보게 된다.
이직을 하고 적응을 한다고 생각이 많은 내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회 생활을 얼마나 해 보았다고 벌써부터 내 잣대를 들이대냐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첫 직장이 아니라 마지막 직장이라고 말이다.
첫단추가 좋아야 세상살이가 쉽다고만 생각했는데... 정말 속물이었나 싶다.
이 책은 인생에 관한 종합선물셋트같은 젊은이들에게 선물을 전해주는 산타같은 란도샘이야기다.
많은 이야기 중에 "이별, 그 후"의 편지 부분은 내 청춘의 편지가 내게 회송된 글 같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사랑은 풋풋했었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은 한없이 이기적이지 않았었냐고 내게 되묻는다.
P.145 결국 그 사람이 왜 너를 떠났다고 생각해? 서로 너무 달라서? 그 장벽을 뛰어넘기에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어차피 맺어질 수 없는 게 너무 분명하니까 지금이라도 헤어지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 같아서? 아니면, 결국 너를 사랑하니까?
난 그렇게 생각안 해. 그 사람이 너를 떠난 건, 네가 충분히 갖지 못한 '그 무엇'때문이야. 그가 내심 기대했지만 너는 충분히 줄 수 없었던 '그 무엇.' 그러면서 실은 한 번도 네게 정확히 말하지는 않았던 '그 무엇.' 바로 그것 때문에 그는 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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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네가 무너진다고 해서 그 사람, 다시 돌아오지 않아. 혹시 기회가 오더라도 그와는 다시 만나지 마. 다시 만나게 되더라도 언제가는 똑같은 일을 다시 겪게 될 거야. 아까 이야기한 '그 무엇'을 네가 갖추기 전까지는.
'그 무엇'이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갖출 수 없는 것일지라도, 너무 좌절하지는 말아. '그 무엇'이란 무척 상대적인 것이거든. 네가 언젠가 만날 다른 어떤 사람에겐, 지금 네가 가진 그것이 너의 가장 큰 매력이 될 수도 있어.
그는 너를 사랑하기에 떠난 것이 아니야. 너보다는 자신을 더 사랑하기에 떠났어. 이기적인 사람이지. 하지만 너무 원망하거나 욕하지는마. 우린 모두 이기적이 잖아. 하지만 누군가, 서로에게 이기적이고 싶지 않게 되는 사람이 저 거리 어딘가에 분명히 있어.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났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는 거야. 다만 이번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던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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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정말 그런거 같다. 늘 이기적이었다. 이기적인 행동은 물론, 이제까지 내 입장에서만 생각했지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전혀 생각해주지 못했으니... 그는 늘 나를 위한 행복을 빌어 줬었는데 말이다.
헌데, 이기적인 그 결정을 내릴때, 나는 왜 내자신이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 모든 것들이 지금이니깐, 내가 볼 수 있는 것일까?
조지 버나드쇼가 젊음을 젊은이에게 주기는 아깝다고 했던 말처럼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지금이니까 그 것들이 보여지는 것인가?! 나의 부족함을 탓하기 이전에 상대에게서만 받으려고 했던 나의 이기심..
오늘 밤, 참 많은 생각이 스친다. 더욱 미안해진다. 그리고 내가 작아진다.
그래도, 그래도 나보다 멋지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 것인지...
그게 다 내덕이라고, 멀리서 그 행복 영원하라고, 그게 최선이었다고 날 위로해 본다. 외쳐본다.
이 역시 이기적인 생각으로 말이지... ^^
할머니의 밀대 -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II
....
마르셀 프루스트는 추억이 담긴 사물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작은 가리비 모양의 마들렌이 일깨운 추억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우울한 내일을 예상하며 음울한 하루를 보낸 지친 나는 마들렌 한 조각을 적신 차를 한 수저 입에 떠 넣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내게 일어나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 동작을 멈추었다." 보잘 것 없는 빵 조각이 기억과 상실에 관한 명작을 탄생시켰다. 의식을 깨우는 감각의 힘에 대한 프루스트의 성찰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아주 먼 과거에서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했을 때, 인간은 죽고 사물은 부서져 산산조각난 후에도, 훨씬 연약하나 오래 견디고, 실체를 찾기 훨씬 힘들고, 훨씬 끈질기고, 훨씬 충실한, 냄새와 맛은 유일하게 오랜 시간 남겨진다. 마치 영혼처럼 다른 모든 폐허 가운데 홀로 기억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져지지 않는 작은 한 방울 정수 속에 흔들림 없이,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품는다.
기억을 깨우는 의미 있는 사물은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이는 단순한 시적 해석을 뛰어넘는, 사무리 지닌 진정한 치유능력의 증거이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D.W. 위니캇은 '중간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아이가 곰인형이나 담요한테 보이는 애착은 엄마에게 받는 사랑이나 안정감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니캇은 그런 중간대상에서 아이의 온유하고 다정한 인성을 발견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의미 있는 사물은 상징주의와 창조성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정신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간현상은 과도기로 끝나지 않는다. 과도기는 결국 과거가 되지만, 환자의 병이나 우울증, 또는 어린 시절의 박탈감에 대한 반작용이나 유사현상에서 과도기적 현상은 일부분을 차지한다...." 중간대상은 기억과 감정과 아직 발굴되지 않은 창조성을 안고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
B의 사례
....
그는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반달과자를 한 상자 샀다.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아버지는 하루 지나 싸게 파는 과자만 사왔다. 그래서 과자는 늘 부서져 있거나 묵은 냄새가 났다. 흠이 없은 신선한 과자가 어떤 맛인지, 어린 시절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혀끝을 감도는 말끔하고 촉촉한 과자의 맛이 낯설고 이상했다. 그래서 그는 퀴퀴한 냄새가 날 때까지 과자를 묵혔다. 며칠이 지나자 과자는 바닐라와 초콜릿이 딱딱하게 굳고 빵에는 물기가 사라진 '딱 알맞는' 상태가 되었고, 그는 드디어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맛을 다시 음미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사물이 지닌 놀라운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과자를 통해 잊었던 맛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경험을 통해 그는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맛과 향의 세계로 돌아갔고, 동시에 새로운 추억까지 얻었으며 어린 시절의 상징적 정수를 되찾았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말미에서 프루스트가 찾아낸 연관성은 위니캇의 견해와 상통한다. "슬픔에 뒤이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슬픔이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 마음에 상처를 주는 슬픔의 위력은 약해진다." 소설 속 비운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어머니를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하면서 자유를 얻는다. 고통이 새로운 생각과 심상으로 바뀌는 순간, B역시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기억을 깨우는 사물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변화이다. 세대 간에 교감할 수 있게 해주고, 기억과 감정이 뿌리내리게 하며, 오래 전 잊혔던 애정을 다시금 돋아나게 하기 때문이다.
수잔 폴락(Susan Pollak)은 하버드 의과대학 심리학과의 임상교수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추억이 담긴 사물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은 작은 가리비 모양의 마들렌이 일깨운 추억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우울한 내일을 예상하며 음울한 하루를 보낸 지친 나는 마들렌 한 조각을 적신 차를 한 수저 입에 떠 넣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내게 일어나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에 집중하기 위해 동작을 멈추었다." 보잘 것 없는 빵 조각이 기억과 상실에 관한 명작을 탄생시켰다. 의식을 깨우는 감각의 힘에 대한 프루스트의 성찰은 누구도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하지만 아주 먼 과거에서 아무것도 살아남지 못했을 때, 인간은 죽고 사물은 부서져 산산조각난 후에도, 훨씬 연약하나 오래 견디고, 실체를 찾기 훨씬 힘들고, 훨씬 끈질기고, 훨씬 충실한, 냄새와 맛은 유일하게 오랜 시간 남겨진다. 마치 영혼처럼 다른 모든 폐허 가운데 홀로 기억하고 기다리고 희망하며, 거의 만져지지 않는 작은 한 방울 정수 속에 흔들림 없이,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품는다.
기억을 깨우는 의미 있는 사물은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이다. 이는 단순한 시적 해석을 뛰어넘는, 사무리 지닌 진정한 치유능력의 증거이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인 D.W. 위니캇은 '중간대상'(transitional object)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아이가 곰인형이나 담요한테 보이는 애착은 엄마에게 받는 사랑이나 안정감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니캇은 그런 중간대상에서 아이의 온유하고 다정한 인성을 발견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글의 주제와 관련된 중요한 사실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의미 있는 사물은 상징주의와 창조성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적어도 정신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중간현상은 과도기로 끝나지 않는다. 과도기는 결국 과거가 되지만, 환자의 병이나 우울증, 또는 어린 시절의 박탈감에 대한 반작용이나 유사현상에서 과도기적 현상은 일부분을 차지한다...." 중간대상은 기억과 감정과 아직 발굴되지 않은 창조성을 안고 있는 미지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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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의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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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고 반달과자를 한 상자 샀다. 넉넉지 않던 시절이었기에 아버지는 하루 지나 싸게 파는 과자만 사왔다. 그래서 과자는 늘 부서져 있거나 묵은 냄새가 났다. 흠이 없은 신선한 과자가 어떤 맛인지, 어린 시절 그는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어째서 일까? 혀끝을 감도는 말끔하고 촉촉한 과자의 맛이 낯설고 이상했다. 그래서 그는 퀴퀴한 냄새가 날 때까지 과자를 묵혔다. 며칠이 지나자 과자는 바닐라와 초콜릿이 딱딱하게 굳고 빵에는 물기가 사라진 '딱 알맞는' 상태가 되었고, 그는 드디어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맛을 다시 음미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사물이 지닌 놀라운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과자를 통해 잊었던 맛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경험을 통해 그는 '추억이라는 거대한 구조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잊고 있었던 맛과 향의 세계로 돌아갔고, 동시에 새로운 추억까지 얻었으며 어린 시절의 상징적 정수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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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말미에서 프루스트가 찾아낸 연관성은 위니캇의 견해와 상통한다. "슬픔에 뒤이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슬픔이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 마음에 상처를 주는 슬픔의 위력은 약해진다." 소설 속 비운의 주인공은 잃어버린 어머니를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하면서 자유를 얻는다. 고통이 새로운 생각과 심상으로 바뀌는 순간, B역시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기억을 깨우는 사물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변화이다. 세대 간에 교감할 수 있게 해주고, 기억과 감정이 뿌리내리게 하며, 오래 전 잊혔던 애정을 다시금 돋아나게 하기 때문이다.
수잔 폴락(Susan Pollak)은 하버드 의과대학 심리학과의 임상교수이다.
중국 수석
내 인생의 의미 있는 사물들
돌은 전형적인 유형체이다. 그런 돌이 어떻게 형이상학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어떻게 돌이 노래를 한다는 것일까? 자연의 끝과 문화의 시작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까?
....
돌을 보고 있노라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3센티미터 크기의 축소 모형수석부터 지지대 없이도 10미터 가까이 올라선 '산'에 가까운 놀라운 수석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형태와 굴곡, 윤곽, 깊이는 모든 방면에서 자기복제를 되풀이 한다. 나는 신비로운 축척의 세계에 빠져든다. 아주 작은 수석이 내 눈 앞에서 자라고, 자라서 산이 된다. 거대하고 극적이다. 풍경의 전체이며 세계의 모든 것이다. 다양한 크기와 방향으로 생겨난 흠과 거칠게 패인 표면 속은 무한한 세계이다. 그 내면에는 깊은 공간과 끊임없는 변화가 존재한다. 수석의 의미는 단순히 윤곽이 아니라 내면의 형태에서 찾아야 한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별을 바로보는 것과같이, 세계 안의 또 다른 세계를 관찰하는 행위이다.
중국 수석은 오랜 예술과 종교의 역사를 지녔다. 송나라시대(960-1279)에 문화를 향유하던 지식인들은 수석을 사색의 도구로 높이 평가하며 원시의 자연을 실내로 옮겨왔다. 또한 수석으로 전통적인 중국 정원에 독특한 개성이 더해지면서, 정원은 녹색 자연보다는 웅덩이와 모퉁이와 굽이길이 있는 동굴 내부를 닮게 되었다. 수석은 시의 주제였고, 주로 바위와 산을 그리던 중국 화권의 소재가 되었다. 활실에서도 수석을 매우 아꼈다. 중국문학에서는 이 같은 숭배의 대상인 수석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수석'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사실에서 연유했지만, 알고 보면 수석의 역사는 호수나 지하 동굴에서 수석을 채취하기 시작한 기원전 2세기의 초기 도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인들이 수석을 고르고, 작업을 하고, 장식대에 올리게 된 이유는 그것이 신의 거처라고 믿었던 산을 연상시켰지 때문이다. 의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수석의 신비는 중국 예술과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석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의미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석은 자연의 선물이며, 동시에 의미를 중심축으로하는 중국의 문화이다. 결국 수석을 보며 드는 감정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석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사물이다. p.322
......
낸시 로젠블룸(Nancy Rosenblum)은 하버드대학교 정부학과 학과장이자 정치 및 정부 윤리학 조셉S 클락교수이다.
돌은 전형적인 유형체이다. 그런 돌이 어떻게 형이상학적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어떻게 돌이 노래를 한다는 것일까? 자연의 끝과 문화의 시작은 어느 지점에서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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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보고 있노라면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고 만다. 3센티미터 크기의 축소 모형수석부터 지지대 없이도 10미터 가까이 올라선 '산'에 가까운 놀라운 수석까지, 그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형태와 굴곡, 윤곽, 깊이는 모든 방면에서 자기복제를 되풀이 한다. 나는 신비로운 축척의 세계에 빠져든다. 아주 작은 수석이 내 눈 앞에서 자라고, 자라서 산이 된다. 거대하고 극적이다. 풍경의 전체이며 세계의 모든 것이다. 다양한 크기와 방향으로 생겨난 흠과 거칠게 패인 표면 속은 무한한 세계이다. 그 내면에는 깊은 공간과 끊임없는 변화가 존재한다. 수석의 의미는 단순히 윤곽이 아니라 내면의 형태에서 찾아야 한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별을 바로보는 것과같이, 세계 안의 또 다른 세계를 관찰하는 행위이다.
중국 수석은 오랜 예술과 종교의 역사를 지녔다. 송나라시대(960-1279)에 문화를 향유하던 지식인들은 수석을 사색의 도구로 높이 평가하며 원시의 자연을 실내로 옮겨왔다. 또한 수석으로 전통적인 중국 정원에 독특한 개성이 더해지면서, 정원은 녹색 자연보다는 웅덩이와 모퉁이와 굽이길이 있는 동굴 내부를 닮게 되었다. 수석은 시의 주제였고, 주로 바위와 산을 그리던 중국 화권의 소재가 되었다. 활실에서도 수석을 매우 아꼈다. 중국문학에서는 이 같은 숭배의 대상인 수석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고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수석'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사실에서 연유했지만, 알고 보면 수석의 역사는 호수나 지하 동굴에서 수석을 채취하기 시작한 기원전 2세기의 초기 도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인들이 수석을 고르고, 작업을 하고, 장식대에 올리게 된 이유는 그것이 신의 거처라고 믿었던 산을 연상시켰지 때문이다. 의미있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수석의 신비는 중국 예술과 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수석을 통해 찾을 수 있는 의미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수석은 자연의 선물이며, 동시에 의미를 중심축으로하는 중국의 문화이다. 결국 수석을 보며 드는 감정은 나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석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사물이다. p.322
......
낸시 로젠블룸(Nancy Rosenblum)은 하버드대학교 정부학과 학과장이자 정치 및 정부 윤리학 조셉S 클락교수이다.
책은 먼 곳에서 찾아 온 벗입니다

[BOOK] 책은 먼 곳에서 찾아 온 벗입니다 -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 새해 특별기고
책은 벗입니다. 먼 곳에서 찾아온 반가운 벗입니다. 배움과 벗에 관한 이야기는 『논어』의 첫 구절에도 있습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學而時習之不亦說乎).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않으랴(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가 그런 뜻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수험공부로 맥질해야 하는 학생들에게 독서는 결코 반가운 벗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빨리 헤어지고 싶은 불행한 만남일 뿐입니다. 밑줄 그어 암기해야 하는 독서는 진정한 의미의 독서가 못됩니다.
독서는 모름지기 자신을 열고, 자신을 확장하고 그리고 자신을 뛰어넘는 비약(飛躍)이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는 삼독(三讀)입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으로 그 텍스트를 집필한 필자를 읽어야 합니다. 그 텍스트가 제기하고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필자가 어떤 시대, 어떤 사회에 발 딛고 있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처지와 우리시대의 문맥(文脈)을 깨달아야 합니다.
수험공부 다음으로 많은 것이 아마 교양을 위한 독서라 할 수 있습니다. 교양이 무엇인가에 관한 논의를 일단 접어둔다고 하더라도 교양독서 역시 참된 독서가 못됩니다. 그것은 자신을 여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신을 가두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양독서는 대개 고전독서이기도 합니다. 고전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필요합니다. 고전은 인류가 도달한 지적 탐구의 뛰어난 고지(高地)들이고 그것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과거와의 소통도 어렵고 동시대인들과의 소통도 어렵습니다. 돈키호테와 햄릿에 대하여 알지 못하면 대화가 어렵습니다. 그런 점에서 고전은 언어와 같습니다.
우리 사회의 지성 신영복(70)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2011년 새해를 축하하는 글과 서화(위쪽)를 중앙일보 독자들에게 보내왔다. 한국 현대사의 온갖 질곡을 몸으로 겪어온 신 교수는 이번 글에서 책과 삶, 그리고 사회의 의미를 반추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위한 소통이며 무엇을 위한 대화인가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돈키호테는 시대착오적인 어떤 중세기사의 이야기가 아니며, 햄릿은 덴마크 왕자의 개인적인 비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탈 중세(脫中世)의 전개과정이나 인간 존재의 운명적 비극에 대하여 고뇌하지 않고 그것을 단지 교양이나 대화의 소재로 삼는 경우 자신을 확장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가두는 것이 됩니다. 독서는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읽고 자기가 대면하고 있는 세계를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와 맺고 있는 사회역사적 관련성을 성찰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문사철(文史哲)을 공부하는 까닭은 그것을 통하여 깊이 있는 세계인식에 도달하기 위한 것입니다. 시서화(詩書畵)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문사철이 언어(言語), 개념(槪念), 논리(論理)로 인식하는 것임에 비하여 시서화는 이를테면 소리와 빛으로 소통하는 뛰어난 세계인식입니다. 문사철 방식에 비하여 시서화의 방식이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수용되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는 급속한 미디어의 변화는 이 시서화의 세계마저 영상서사(映像敍事)로 바꾸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책과 종이 그리고 독서의 종말을 예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사철이든 시서화든 영상이든 그것은 우리들 자신과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정직한 이해를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본질에 있어서는 조금도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느 경우든 인간과 사회와 자연에 대한 올바른 인식 그리고 우리들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핵심입니다. 그러한 성찰만이 우리의 삶을 보다 인간적인 것으로 키워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영상서사는 그것의 뛰어난 대상인식에도 불구하고 그 성찰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문학서사(文學敍事)가 요구하는 독자의 자신의 고뇌와 성찰이 사라지고 독자로 하여금 복제와 카피라는 대단히 안이한 자리에 나앉게 함으로써 우리들을 또 한 번 소외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류사의 장구한 지적 탐구를 통하여 키워온 그 치열한 성찰성에 주목하고 다시 한 번 독서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이와 같습니다.
고전의 반열에 올라있는 책들이 반드시 당대의 최고의 지적탐구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고전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사의 전개과정이 그러했듯이 앞으로의 모든 미래지향 역시 지금까지의 역사를 디딤돌로 하여 나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점에서 독서와 문학서사는 최근의 급속한 미디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발 딛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역사 그 자체이며 무형의 문화유산입니다. 언어 개념 논리라는 쉽지 않은 인식 틀을 키워온 인류의 정신사는 그것이 비록 세계인식의 최고형식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류의 지적 탐구를 뒷받침해 온 탄탄한 초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의 핵심이 바로 성찰(省察)입니다. 성찰은 철학적 추상력(抽象力)과 문학적 상상력(想像力)을 양 날개로 하는 자유로운 비상(飛翔)이며 조감(鳥瞰)입니다. 이러한 비상과 조감을 가능하게 하는 생각의 재구성이 바로 성찰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여정을 내려다보는 창공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온 여정의 연장선상에서 다시 성찰과 비상이라는 지적 여정을 이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독서,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기가 갇혀 있는 문맥, 우리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리고, 드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자유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여정에서 길어 올려야 하는 우리들 자신에 대한 애정입니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더 좋은 책, 더 좋은 왕도(王道)는 없습니다. 한 마리 작은 새가 하늘을 날아오르는 것이 그렇습니다. 어미 새의 체온과 바람과 물 그리고 수많은 밤들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어느 날 아침 문득 빛나는 비상으로 날아오릅니다. 고뇌와 방황으로 얼룩진 역경의 어느 무심한 중도 막에 그 때까지 쌓아온 회한과 눈물이 어느 순간 빛나는 꽃으로 피어오릅니다. 독서도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책이든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고뇌와 성찰의 작은 공간인 한 언젠가는 빛나는 각성(覺醒)으로 꽃피어나기 마련입니다. 언약(言約)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날 것입니다.
독서는 만남입니다. 성문(城門) 바깥의 만남입니다. 자신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서는 자신의 확장이면서 동시에 세계의 확장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만남인 한 반드시 수많은 사람들의 확장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마치 바다를 향하여 달리는 잠들지 않는 시내와 같습니다. 한 사람 한사람의 각성이 모이고 모여 어느덧 사회적 각성으로 비약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와 우리시대가 갇혀 있는 문맥(文脈)을 깨트리고, 우리를 뒤덮고 있는 욕망의 거품을 걷어내고 드넓은 세계로 향하는 길섶에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굳이 새해의 일출을 보기 위하여 동해로 가지 않아도 됩니다. 일출은 도처에 있습니다. 반가운 만남과 성찰을 쌓아가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찬란한 일출은 있습니다. 새해의 빛나는 성취를 기원합니다.
사진=안성식 기자
◆신영복은 누구인가=한국의 대표적 진보 학자로 꼽힌다. 194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숙명여대와 육군사관학교에서 ‘후진국 개발론’ ‘경제원론’ 등을 강의하다 스물일곱살이던 68년 ‘통일혁명당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됐다. 그는 통혁당에 가입한 적이 없었으나, ‘통혁당 지도간부’로 기소됐다고 한다. 대법원에서 무기형을 받고, 88년 가석방되기까지 20년 간 수감 생활을 했다. 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했으며 2006년 정년퇴임했다.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며, 한국 사회에 인문학 붐을 일으켰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2001년), 『더불어숲』(2003), 『처음처럼』(2007) 등의 책을 냈다.
출처 :[중앙일보] 입력 2011.01.01 00:12 / 수정 2011.01.01 00:12
sempe
주님, 주님도 아시다시피 2주 전에 저는 화를 내는 죄를 범했습니다.
왜냐하면 미사가 좀 늦게 끝나, 제과점에서 손주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커피 크림 에클레르 과자를 살 수 없었지요. 주님도 아시다시피 그 대신에 초콜릿 를리지외즈 과자를 샀고, 이런 이류로 남편이 놀리며 부화를 돋우는 통에 저는 그만 화를 내는 죄를 범하고 말았답니다.
이런 종류의 말썽을 피하기 위해 지난 주일에는 미사에 가기 전에 제과점에 들러 미리 주문을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젊은 여점원이 깜빡해서, 저는 두 차례나 화내는 죄를 또 지었습니다.
한 번은 점원에게, 또 한 번은 남편에게요.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늘은 성당에 오기 전에 아예 과자를 사버렸고, 주님께서도 방금전에 성스러운 주님의 집에 과자 상자를 들고 들어오는 제 모습을 보셨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주님을 도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벌하시기 위해, 조금 전 감사 기도 드린 후 제가 과자 상자 위에 앉도록 하셨기 때문이죠. 주님, 감사합니다.
출처 : 어설픈 경쟁
왜냐하면 미사가 좀 늦게 끝나, 제과점에서 손주들이 굉장히 좋아하는 커피 크림 에클레르 과자를 살 수 없었지요. 주님도 아시다시피 그 대신에 초콜릿 를리지외즈 과자를 샀고, 이런 이류로 남편이 놀리며 부화를 돋우는 통에 저는 그만 화를 내는 죄를 범하고 말았답니다.
이런 종류의 말썽을 피하기 위해 지난 주일에는 미사에 가기 전에 제과점에 들러 미리 주문을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젊은 여점원이 깜빡해서, 저는 두 차례나 화내는 죄를 또 지었습니다.
한 번은 점원에게, 또 한 번은 남편에게요.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오늘은 성당에 오기 전에 아예 과자를 사버렸고, 주님께서도 방금전에 성스러운 주님의 집에 과자 상자를 들고 들어오는 제 모습을 보셨습니다. 이런 제 모습이 주님을 도하게 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를 벌하시기 위해, 조금 전 감사 기도 드린 후 제가 과자 상자 위에 앉도록 하셨기 때문이죠. 주님, 감사합니다.
출처 : 어설픈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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