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책의 문화사
세계사에 처음으로 기록된 작가는 약 4300년 전에 살았던 수메르의 공주 였으며 고금을 통해 가장 위대한 서정시인 중 한명은 바로 그리스의 사포라고 한다. 일본의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여성 최초로 소설을 썼으며 중세 유럽에서는 아일랜드 출신인 킬데어의 브리지다와 독일 출신인 빙겐의 힐데가르트 같은 수녀들이 수녀원에서 지식을 지켜냈다고 한다.
여성의 자리는 가정이었고, 여성에게 필요한 지식과 능력은 가정에서 배울 수 있었기에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이 지식 활동에 폭넓게 참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식으로 교육을 받는 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 었다. 또한 사람들은 여성을 교육하는 것이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역효과를 낳는다고 믿었다. 여성이 책을 읽게 되면 아이들을 양육하고 살림을 꾸려나가며 남편이 편안하도록 돌보는 일, 즉 가정에 대한 책임을 소홀하게 여길 것이기 때문에 독서는 단지 시간 낭비일 뿐이라고 생각했단다.
화가 폴 고갱의 할머니인 플로라 트리스탕Flora Tristan(1803-0844)은 가난 때문에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는 여성들을 가르치다가 건강을 해쳤으며 그리스 출신으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약했던 여성 철학자이자 수학자 히파티아Hypatia(355-415)나 프랑스 혁명기의 여권 운동가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1748-1793)은 모두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려 했다. 그러나 히파티아는 폭도들에게, 올랭프 드 구즈는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단두대에서 목숨을 잃었다.
1640년대에는 지속적으로 기술이 발전하면서 유럽 전역에서 도서 출판이 성시를 이뤘고, 근대 초기의 여성 독자들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많은 종류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물론 여성들이 읽는 책은 여전히 종교 서적이 주종을 이뤘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부유한 집안 출신 여성들은 이제 지리책, 여행 문학, 순수 문학과 희곡 같은 분야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신생 공화국인 미국에서도, 독서는 상류 계급이 일반적인 활동이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의 모범에 따라 여성들의 사교 모임(남성의 역으로 제한되었던 문학 클럽과는 성격이 달랐다)에서 고전 문학을 논하는 일이 점차 인기를 얻었다. 1800년 무렵에는 영국 출신 미국 여성의 절반이 알파벳을 읽을 줄 알았으며 19세기 말에서야 여성 독자들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독립을 얻었다. 여성 고등 교육의 확대도 30세기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오하이오 주 소재 오벌린 대학(1833년 설립)은 동등한 조건에서 남녀 학생을 받아 들인 미국 최초의 대학(1838년 졸업한 여학생은 단 한명)이었으며 미시건, 캘리포니아, 위스콘신 대학등 주립대학들은 1850-1860년대 사이에 남녀공학으로 바뀌었다.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옥스퍼드 대학교 최초의 여자대학인 레이디 마가렛 홀에서 1879년에 여학생 9명을 처음으로 받아 들였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는 1948년에야 소속 여자대학 학생들에게 학위를 수여했으며 미국대학교에서는 1861-1900년 사이에 대략 1,700명의 여성 박사가 배출되었지만, 영국의 여성 박사 학위자는 100명에 불과했다.
심지어 공립학교 제도가 생긴 다음에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교과 과정은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었으며 19세기가 되어서도 사람들은 여성이 읽을 책은 달라야 한다고 믿었다. 여성들에게는 종교서적이나 유익한 정보서, 몇몇 여행서, 가벼운 전기물, 도덕심을 고양하는 책이나 오락물만 허용되었다. 남성 중심의 기존 질서는 여성의 지적 해방과 기록된 글의 잠재적 전복 효과를 두려워했으며 남성은 여성의 정신이 너무나도 나약하므로 외부의 영향에 노출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단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에서 보듯 여성의 지적 능력이 해방되는데 남성들이 갖는 두려움의 근원을 확인할 수 있다. 심지어 최상위층에서도 책을 많이 읽고 학문을 좋아하는 여성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으며 '말참견하는 여자'를 뜻하는 '비라고Virago'라는 단어는 학문을 좋아하는 여성을 폄하하는 말이었으며, 여성의 지적 관심을 좌절시키는데 이용되었다. 별다른 악의 없이 "독서는 마음에 주름을 만들 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주름을 만든다!"라고 떠들어 대기도 했다.
도서관에서 남녀가 분리된 열람실을 주장했다가 결국 여성에게 개방하게 된 사례는 여성의 책읽기를 통제하려는 남성의 시도가 힘을 잃었으며 여성이 더욱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꾸준히 진보가 이루어졌다. 한때 귀족들의 독점적 특권이었던 독서는 점차 대중의 활동이 되었다. 21세기 현재는 여성의 독서와 교육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이지만 가난과 억압으로 어쩔 수 없이 지식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전 세계의 수많은 여성은 여전히 이 같은 공공의 권리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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