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집
삶이라고 하는 것, 죽음이라고 하는 것, 그런 것은 단지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유혹의 소리는 실제로 존재하면서 노래 부르고 그를 끌어당기며, 하루하루를 올바른 리듬에 맞춰 살아가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그의 길은 고향으로 향해 있었다.
저녁의 숨결이 멀리서부터 불어왔다. 연못에서는 소슬거리는 갈대의 노래가 들려왔다. 밤은 낮에게 소리 내어 외치고, 낮은 밤을 부르고 있었다. 신들의 숨결은 영원히 이어지고 있었다. 노인은 다채로운 색조를 띤 먼 하늘가에서 가까운 곳으로 시선을 옮겨 주의 깊게 정원을 관찰했다. 그의 눈에 비친 정원은 단지 지금 바라보이는 모습만이 아니었다. 그와 나무들 그리고 덤불들을 이어주고 있는 것은 오랜 세월 애정을 지니고 계속되어 온 만남이었다. 이곳에서 자라고 꽃피운것, 집과 라일락이 핀 외진 곳 사이에 있는 좁지만 손질이 잘된 이곳, 정원 안에 홀로 섬처럼 떨어져 밖으로부터는 어떤 시선도 닿을 수 없는 이 녹음 짙은 곳, 여기서 자란 모든 것은 그가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가꾸며 확장한 것이었다. 그러나 완성된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곳은 오히려 미래를 위해서 끊임없이 솟아 나오고 커가는 상념과 그것을 실현시킬 의지로 가득 차 있었다.
......
"제 말은 진심이에요. 아버지는 나무와 화단과 모든 것들을 정말 생동감 넘치게 잘 배치하셨어요. 이보다 더 멋지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아요."
한스는 큰 소리로 말했다.
"얘야, 내게는 결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겠지. 예를 들면 저 아래 정자 앞에 아카시아 나무들이 서 있지. 그 사이에 마가목을 두세 그루 심었는데 그 때문에 전체가 망가져 버리고 말았단다. 내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마가목은 이미 너무 커버려서, 한여름이 되면 푸른 하늘 아래 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길게 늘어뜨린단다. 그것을 다시 없애는 것도 잔혹한 일이지겠지. 하지만 전처럼 아카시아 나무만 서 있었더라면 그 편이 훨씬 아름답고 더 조화로웠을 것 같구나. 여기서 그와 비슷한 일들이 많아.
식물을 가꾸고 좋은 정원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단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일과 마찬가지로 어렵지. 불완전한 것까지도 사랑하려고 결심하지 않으면 안 돼. 그렇지 않으면 실망하게 되고 말지. 너야 물론 나보다 잘해 낼 거야. 너도 아니? 의지의 자유라는 까다로운 주제를 아주 샅샅이 연구해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정원일에 몰두해 봐야 한다. 대단찮아 보이는 관목도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자라지 않는 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냐! 물론 아니지! 네가 어떤 관목을 골라 심었더라도 그건 완전히 너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된단다. 그 배후에는 어떤 무의식적인 바람, 추억, 필연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지.
내가 마가목을 심을 때도 그랬었다. 마가목을 고른 것은 그 모습과 잎이 아카시아 나무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다. 훨씬 나중에 가서야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그게 아니었어. 내가 그 어린 마가목을 갖고 싶었던 진짜 이유는 식목원에서 그 나무가 자라고 있는 곳을 눈여겨보았을 때 어린 시절 할아버지의 정원 한쪽 구석이 떠올랐다는 거야. 식목원으로 찾아가면서는 마가목을 살 마음이 전혀 없었거든. 거기에서 처음 어린나무를보자 갑자기 어린 시절의 한때와 할아버지가 생각나서 산것이란다".
그는 조용히 웃었다.
.......
"젊었을 때는 말이다. 한스야, 자신이 많이 고독하다고 느끼는 법이다. 그리고 고독한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 나서고, 사랑에 빠지고, 가족과 조국을 찾는다. 그것은 참 좋은 일이다. 그 덕에 세계가 번영하는 거니까. 그렇지만 나이가 들 만큼 들면 그런 것들이 더는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 그 때 가서는 우정과 사랑, 조국은 우리를 다른 것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전체로부터 떼어 놓는 껍질 같은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단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전체와 하나가 되고 싶어하지. 이 전체가 다름아닌 신(神)이란다. 너 중국의 이야기를 읽어 본 적이 있니?"
"없는 것 같은데요. 아뇨. 왜 그러세요?"
"중국의 이야기들을 읽어 보면, 같은 인물이 여러가지 모습으로 반복해서 나온단다. 젊은 시절에 그 사람은 부모의 말에 순종하여 직업을 갖기 위해 무언가를 배운다. 성인이 되어서는 결혼을 하고 가족을 보살피며 살아간다. 그러다 조국애를 배우고 무엇보다 선조와 자손의 일을 염려하게 되지. 그는 열심히 일하고 유익한 사람이 되어, 나서서 국가를 끌어가는 일을 돕는다. 그러나 결국 나이를 먹게 되자 자신이 여전히 고독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 해온 모든 일들이 이기적인 욕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고서, 어느 날 밤 집과 논밭, 아내, 하인들, 직무와 서책을 모두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만다. 자신의 때가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산 속으로 들어가 이슬과 꽃잎만을 먹고 살면서, 자신에게 붙어 있던 껍질을 모두 벗어던져 버린다. 그러고 나서 그는 불사의 사람들 사이에 끼게 된다."
.......
"그 사람들이 꽃잎만 먹고 살았다는 말을 정말 믿으세요?"
"알 수 없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릴지도 모르지. 나는 중국인이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산에 들어가 불사의 사람들과 하나가 된 이들의 경지에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 아마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일게다. ...
우리는 자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를 연구했다. 하지만 그 결과 세계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더 나아진 것은 아니다. 우리 인간은 신을 믿는 대신에, 뢴트겐 광선에 관한 비밀 따위를 몇 개 알고 있을 뿐이지. 그런 지식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계에 갑자기 구멍을 뚫어 버렸다. 그리하여 이 세계의 모든 것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놀라운 것임을 알려주었다. 우리가 옛날보다 가난해진 것은 물론 아니다. 아니, 그 반대로 우리는 어쩐지 갑자기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진짜 중요한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노인은 작은 화분을 들어올려 화초가 제대로 심어져 있는지를 살펴 보았다.
"중요한 것이란 도대체 뭐지요?" 한스는 주저하듯이 물었다.
"소박함이란다." 노인은 짧고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 장난기 어린 어조로 덧붙였다. "신약성서에는 단순함이라고 씌어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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