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




어릿광대는 계단식 객석에 에워싸인
무대를 돌아다니므로 우리는 그를
'등으로 연기하는 배우'라고 규정했다. 그렇다면
무희는? 무희는 객석 방향으로 한쪽만
개방된 무대에서 춤을 춘다. 그러므로 무희는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정면만
보이는 배우일까? 그래서 어릿광대와는
닮은 데가 없는 것일까? 아니다,
무희는 춤추며 돌고 또 돌고 ... 그렇게
돌다 보면 자연히 관객에게 등도 보이고
얼굴도 보이고 옆모습도 보인다. 안무의
온갖 피겨를 보이자니 제자리에서
돌 수 밖에, 볼트, 투르네, 물리네, 투피,
다리의 뒷모습, 엉덩이, 허벅지,
장딴지, 발목, 뒤꿈치가 만드는 조화로운
연속성, 이 오층 구조물에는
충동, 도약, 비상을 예고하는
축적된 힘이 실려 있다.


출처 : Vues de dos by Michel Tournier & Edouard Boubat

뒷모습 II



인간의 눈과 코는 앞쪽을 향해 있는데
귀는 옆을 향해 있다는 - 겉귀가 앞쪽으로
방향을 약간 들고 있기는 하지만 - 사실을
주목해보았는가? 그리하여 인간은
자기 앞쪽을 바라보면서 좌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의 쑥덕공론은 결코
정면으로 얼굴을 드러내놓고 오는 것이 아니라
옆쪽의 빗댄 소문이나 지방방송으로 웅성대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들의 생김새는 그와
반대다. 눈이 약쪽 옆에 달려 있고
귀는 전방을 향한다.

그러니까 아주 얌전한 듯한 이 처녀는
겉으로 눈앞의 아름다운 바다에만
마음을 쏟고 있는 것 같지만 청년이 건네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도킹, 즉 부두에 배 대기, 뱃전에
접근하기 - 어원 그대로 - 는 그러니까
옆에서 옆을 갖다 대는 측면
접근이다. 청년은 뭐라고 말하는
것일까? 처녀와 떨어져 있는
거리가 상당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다지 위태로운 내용은 아무것도 없는 듯.
어쩌면 남자와 여자가 다 같이 응시하는.
그래서 그들을 한데 맺어주는
저 아름다운 바다의 정경에 대하여
말하고 있겠지. 잠시 후면 그 거리도
좁혀지겠지. 아마 접촉도
이루어지겠지. 우리와 당신과
나에 대하여 말하게 되겠지. 아니.
심지어 둘다 입 다물고 말이 없겠지.
가장 은밀한 이심전심인 그 침묵.


Vues de dos
by Michel Tournier & Edouard Boubat

뒷모습 I



말해봐요, 할머니, 그렇게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고 가는 것은 땅바닥에 떨어뜨린 젊은 날을
줍기 위해서인가요. 아니면 등을 짓누르는
세월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인가요? 말해봐요.
할머니, 할머니는 지팡이가 세 개인가요.
다리가 세 개인가요?
말해봐요, 할머니. 그 어느 시신에
성수를 뿌려주려고 회양목 가지를
옆구리에 끼고 가나요?

미셀 투르니에 지음 / 에두아르 부바 사진 현대문학

가을 몸 - 박노해

비어가는 들녘이 보이는
가을 언덕에 홀로 앉아
빈 몸에 맑은 별 받는다

이 몸 안에
무엇이 익어 가느라
이리 아픈가

이 몸 안에
무엇이 비워 가느라
이리 쓸쓸한가

이 몸 안에
무엇이 태어나느라
이리 몸부림인가

가을 나무들은 제 몸을 열어
지상의 식구들에게 열매를 떨구고
억새 바람은 가자 가자
여윈 어깨를 떠미는데

가을이 물들어서
빛바래 가는 이 몸에
무슨 빛 하나 깨어나느라
이리 아픈가
이리 슬픈가

출처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