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주의에 관한 명상록이여서 그런지 읽는데 너무 거부감이 들었다.
명상록이여서 그런걸까?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좋은 생각' 보다는 내 인생을 죽음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책이란 생각이 더 깊다. 어쩌면 철학이라는 것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사실화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스토아주의자들은 인생의 최대 행복을 자연과 조화되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고 하지만 이거는 좀... 내게는 편안함 보다는 무섭기까지 했다는 거~
그들에게 '자연'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 돌, 물과 같은 비인격적 실체가 아니라 만물을 유지 성장 시키고 활동하게 하는 힘이며, 동시에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인과적 원리들에 의해 만물의 질서를 세우는 힘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삶이 너무 힘들어 명상을 하는 이들에겐 어쩌면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들지도 모르는 책이란 생각이 들곤했다. 바보같지만 말이다.
책의 분량은 얼마 안되기에 쉽게 부담없이 읽기 좋겠지만 그 뜻을 되뇌이며 읽기에는 한 없이 무거운 책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중간 중간 좋은 글귀도 있지만 생각보다 괜찮지는 않았던 책이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한 스토아주의에 대한 내용은 간단명료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던 책.
(아우렐리우스의 인생의 법칙 150) Meditations
스토아주의 (stoicism)란?
B.C. 3세기경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n)에 희해 창시된 스토아철학은 로마 제정 시대에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시기의 철학을 가리켜 후기 스토아주의라 부른다. 후기 스토아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세네카(Seneca), 에픽테투스(Epictetus),그리고 아우렐리우스(Aurelius)를 들 수 있다. 집정관을 지냈던 세네카는 영혼과 육체의 구별을 강조해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노예 출신인 에픽테투스는 범신론과 사해동포주의(cosmoplitanism)를 주장했다.
스토아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원에서 정한 철학의 세 분과, 즉 논리학, 물리학, 윤리학의 탐구에 힘썼는데, 특히 철학의 핵심적 목표를 윤리적 삶에 두고서 자신들의 독특한 철학적 통찰을 우주론에 전개 시켰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지표를 자연에서 찾으려 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인생의 최대 행복을 자연과 조화되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자연'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 돌, 물과 같은 비인격적인 실체가 아니라 만물을 유지, 성장시키고 활동하게 하는 힘이며, 동시에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인과적 원리들에 의해 만물의 질서를 세우는 힘을 의미한다.
이 자연에 깃들어 있는 우주의 운행 질서와 변화의 법칙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의 참된 질서와 법칙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 즉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자연에 대한 통찰에 의해서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세계는 인간과 사물들이 목적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질서 정연한 장소이다. 그들은 자연 전체에 이성과 법칙이 작용한다고 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특별한 신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이란 자연 전체, 즉 모든 사물 안에 존재하는 이성적인 실체이다. 자연의 전 구조를 통제하고 배열하며, 사건들의 발생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전체에 퍼져 있는 실제적인 형태의 이성' 곧 신이다.
스토아철학의 중심적 관념은 신이 만물 안에 내재한다는 개념이다. 신은 불, 힘, 로고스며, 신이 만물에 내재한다는 것은 곧 전체가 이성의 원리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신, 즉 로고스는 불, 기, 물, 땅을 만들고 그것을 혼합해 만물을 만들어 낸다. 로고스는 쇠에서는 단단함으로, 돌에서는 밀도로, 은에서는 하얀 광택으로 부른다. 그리고 모든 사물은 최후에 원래의 것으로 돌아가고 다시 새롭게 만들어 지는데, 그것은 긴 세월을 주기로 해 되풀이 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봄으롯써 흔히 운명론이나 숙명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씨앗에 그것이 자라게 될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듯이, 만물의 모든 현상은 처음부터 로고스 안에 존재한다. 그 것은 우주, 즉 신에 의해 정해진 섭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주는 전체로서 유기체를 이루고 있으며, 필연과 결정에 의해 지배된다. 즉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세계가 이성, 혹은 신에 의해 펼쳐진 물질적 질서인 것처럼 인간도 그것에 의해 퍼진 물질적 존재이다.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은 바로 인간이 신의 실체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곧 신은 세계의 영혼이며, 인간의 영혼은 신의 일부분이다. 인간의 영혼은 신에게서 비롯되어 물리적인 방식으로 부모에 의해 자식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신은 로고스 즉, 이성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 또한 이성에 뿌리박고 있으며, 결국 인간의 개성은 이성의 힘 속에서 독특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에게 있어서 이성의 능력은 인간이 사유하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실제적인 질서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모든 사물이 하나의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 법칙의 질서에 인간의 행동을 관련시키려는 것이 스토아철학의 주된 관심사였다.
명상록이여서 그런걸까? '내 인생을 변화시키는 좋은 생각' 보다는 내 인생을 죽음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책이란 생각이 더 깊다. 어쩌면 철학이라는 것은 죽는 것을 배우는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을 사실화 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 스토아주의자들은 인생의 최대 행복을 자연과 조화되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고 하지만 이거는 좀... 내게는 편안함 보다는 무섭기까지 했다는 거~
그들에게 '자연'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 돌, 물과 같은 비인격적 실체가 아니라 만물을 유지 성장 시키고 활동하게 하는 힘이며, 동시에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인과적 원리들에 의해 만물의 질서를 세우는 힘을 의미한다고 하지만... 삶이 너무 힘들어 명상을 하는 이들에겐 어쩌면 자연으로 돌아가게 만들지도 모르는 책이란 생각이 들곤했다. 바보같지만 말이다.
책의 분량은 얼마 안되기에 쉽게 부담없이 읽기 좋겠지만 그 뜻을 되뇌이며 읽기에는 한 없이 무거운 책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중간 중간 좋은 글귀도 있지만 생각보다 괜찮지는 않았던 책이다.
하지만 에필로그를 통한 스토아주의에 대한 내용은 간단명료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었던 책.
(아우렐리우스의 인생의 법칙 150) Meditations
스토아주의 (stoicism)란?
B.C. 3세기경 그리스 철학자 제논(Zenon)에 희해 창시된 스토아철학은 로마 제정 시대에 전성기를 누리게 되었는데, 이시기의 철학을 가리켜 후기 스토아주의라 부른다. 후기 스토아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로는 세네카(Seneca), 에픽테투스(Epictetus),그리고 아우렐리우스(Aurelius)를 들 수 있다. 집정관을 지냈던 세네카는 영혼과 육체의 구별을 강조해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노예 출신인 에픽테투스는 범신론과 사해동포주의(cosmoplitanism)를 주장했다.
스토아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원에서 정한 철학의 세 분과, 즉 논리학, 물리학, 윤리학의 탐구에 힘썼는데, 특히 철학의 핵심적 목표를 윤리적 삶에 두고서 자신들의 독특한 철학적 통찰을 우주론에 전개 시켰을 뿐만 아니라 삶의 지표를 자연에서 찾으려 했다.
스토아주의자들은 인생의 최대 행복을 자연과 조화되는 삶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들에게 '자연'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나무, 돌, 물과 같은 비인격적인 실체가 아니라 만물을 유지, 성장시키고 활동하게 하는 힘이며, 동시에 정해진 시간에 따라 인과적 원리들에 의해 만물의 질서를 세우는 힘을 의미한다.
이 자연에 깃들어 있는 우주의 운행 질서와 변화의 법칙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과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 사회의 참된 질서와 법칙을 깨닫고자 하는 사람, 즉 지혜를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자연에 대한 통찰에 의해서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의 길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삶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 따르면, 세계는 인간과 사물들이 목적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는 질서 정연한 장소이다. 그들은 자연 전체에 이성과 법칙이 작용한다고 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특별한 신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이란 자연 전체, 즉 모든 사물 안에 존재하는 이성적인 실체이다. 자연의 전 구조를 통제하고 배열하며, 사건들의 발생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전체에 퍼져 있는 실제적인 형태의 이성' 곧 신이다.
스토아철학의 중심적 관념은 신이 만물 안에 내재한다는 개념이다. 신은 불, 힘, 로고스며, 신이 만물에 내재한다는 것은 곧 전체가 이성의 원리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신, 즉 로고스는 불, 기, 물, 땅을 만들고 그것을 혼합해 만물을 만들어 낸다. 로고스는 쇠에서는 단단함으로, 돌에서는 밀도로, 은에서는 하얀 광택으로 부른다. 그리고 모든 사물은 최후에 원래의 것으로 돌아가고 다시 새롭게 만들어 지는데, 그것은 긴 세월을 주기로 해 되풀이 된다.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봄으롯써 흔히 운명론이나 숙명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씨앗에 그것이 자라게 될 요소가 모두 포함되어 있듯이, 만물의 모든 현상은 처음부터 로고스 안에 존재한다. 그 것은 우주, 즉 신에 의해 정해진 섭리이기도 하다. 이렇게 우주는 전체로서 유기체를 이루고 있으며, 필연과 결정에 의해 지배된다. 즉 운명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스토아철학자들은 인간의 본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세계가 이성, 혹은 신에 의해 펼쳐진 물질적 질서인 것처럼 인간도 그것에 의해 퍼진 물질적 존재이다. 인간이 자신의 내부에 신성을 가지고 있다는 거은 바로 인간이 신의 실체 일부분을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곧 신은 세계의 영혼이며, 인간의 영혼은 신의 일부분이다. 인간의 영혼은 신에게서 비롯되어 물리적인 방식으로 부모에 의해 자식에게 전달된다. 그런데 신은 로고스 즉, 이성이기 때문에 인간의 영혼 또한 이성에 뿌리박고 있으며, 결국 인간의 개성은 이성의 힘 속에서 독특하게 표현된다.
그러나 스토아학파에게 있어서 이성의 능력은 인간이 사유하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의 실제적인 질서와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를 인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즉 모든 사물이 하나의 법칙을 따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인데, 이 법칙의 질서에 인간의 행동을 관련시키려는 것이 스토아철학의 주된 관심사였다.
출처 : 이현우, 이현준(편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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