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I)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어떻게 살 것인가
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2. 28 ∼1592. 9. 13

 어떻게 살 것인가? 
“재미를 찾는 어린아이처럼 읽지 마라. 야심 찬 사람처럼 교훈을 얻으려고 하지도 마라.
‘살기 위해서’ 읽어라.” -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880, 프랑스 작가 )

01.죽음을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 죽어야 할지 모르더라도 걱정하지 마라. 그때가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자연이 소상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일러줄 것이다. 자연이 그 일을 완벽하게 처리할 테니 그 문제로 고민하지 마라. p.035

02. 주의를 기울여라.
단 한 가지 확실한 진실이 있다. 그것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인간보다 비열하고 오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 대 플리니우스 

당신은 단 한 번의 사고로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 에우리피데스 

근심 없는 사람의 인생만큼 아름다운 인생은 없다. 근심 없는 삶은 참으로 고통 없는 악이다. - 소포클레스

인생은 순식간에 흘러가버린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려고 소란을 피우지 않고 조용히 미끄러지듯 흘러간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인생이 시간을 재촉하며 흘러가고 있어도 다른 일에 몰두하고 있으면 박바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나 자신을 죽음에게 내어주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p.057.

꽉 움켜쥐지 않으면 인생이 당신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나 꽉 움켜쥐더라도 인생은 당신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은 따라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급류는 늘 흐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급류가 마르기 전에 서둘러 물을 마시듯 인생을 재빨리 마셔야 한다." 인생을 꽉 움텨질 수 있는 비결은 매 순간 겪는 경험에 꾸밈없이 순수하게 경탄하는 것이고, 가장 좋은 방법은 몽테뉴처럼 모든 경험을 글로 옮기는 것이다. 책상 위에 놓인 물체, 창문에서 내다보이는 경관을 글로 묘사해 보면 평범한 사물이 얼마나 경탄할 만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더욱 환상적인 영역이 눈앞에 펼처진다.

03. 태어나라.
어렸을 때에는 일정한 수준까지 변화되기 쉽지만 타고난 기질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이다. 타고난 기질은 좋은 방향으로 인도하거나 단련시킬 수 있지만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에세이에서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누구나 교육 받은 대로 하지 않으려는 자기만의 독특하고 지배적인 성향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p.089

04. 책을 많이 읽되, 읽은 것을 잊고 둔하게 살아라.
몽테뉴가 일고여덟 살 쯤 되었을 때 나이에 걸맞지 않은 책이었지만 그의 인생을 바꾼 책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Aeneis)"
테렌티우스와 플라우투스의 작품 느리게 살기 운동-독일의 작가 수템 나돌니(Sten Nadolny)의 소설 "느림의 발견(Die Entdeckung der Langsamkeit)"

05. 사랑과 상실을 이겨내라
라 보에시의 시뿐만이 아니라 몽테뉴도 두 사람의 관계를 초월적인 신비로 묘사하거나 두 사람이 엄청난 사랑의 격랑에 빠져들었다고 표현한 구절도 있다. 그는 어떤 일에서나 절제하는 태도를 견지하였으나 라 보에시와의 관계에서는 그러한 원칙이 무너졌으며, 독립성에 대한 사랑도 무너져버렸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영혼은 완벽하게 서로 어우러지고 뒤섞여 두 사람이 결합한 이음새가 지워져서 다시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는 두 사람의 관계를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는 책 여백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내가 왜 그를 사랑하는지 말하라고 내게 강요하더라도, 나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다. 그가 있기 때문이고, 내가 있기 때문이다.

06. 작은 요령을 부려라.
몽테뉴와 같은 사상 체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세 학파는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 회의주의였다. 이 철학 체계를 통틀어 헬레니즘이라고 하다. 이 세학파의 목표는 똑같다. 그리스어로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고 하는 생활 방식을 성취하는 것으로서, 에우다이모니아는 대체로 행복, 기쁨 또는 인간적인 번영으로 번역된다. 이는 풍요롭고 즐거운 인생,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등 모든 면에서 잘 사는 것을 뜻한다. 이 학파들은 에우다이모니아에 이르는 지름길은 아타락시아(ataraxia)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 하였다. 아타락시아는 침착이나 근심으로부터 자유로움으로 옮길 수도 있고 평정을 뜻하며,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나갈 때에도 기뻐 날뛰지 않고 모든 일이 꼬일 때에도 실의에 빠지지 않으면서 냉점함을 유지하는 기술이다. 

스토아학파의 또 다른 수련방법은 영겁의 시간이 계속 돌고 도는 것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이다. 그러면 소크라테스는 다시 태어나 그가 처음 태어났을 때 처럼 아테네에서 제자들을 가르칠 것이다. 나비들은 모두 똑같은 식으로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다닐 것이다. 구름은 늘 같은 속도록 머리 위를 지나갈 것이다. 나 자신도 다시 태어나 예전과 똑같은 생각을 하고 똑같은 감정을 느끼며 죽었다 다시 태어나기를 끝없이 반복할 것이다.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다른 방법들과 마찬가지로, 이 방법도 모든 어려움이 잠깐 스치고 지나갈 덧없는 것으로 보이게 해준다. 동시에 내가 과거에 한 일이 모두 되돌아와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모든 일이 중요하게 느껴질 것이다. 어떤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어떤 일도 잊어버릴 수가 없다. 이런 방식으로 명상하면 매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욱 주의하게 된다. 이것은 일종의 도전이지만, 스토아주의 철학자들이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운명을 '받아들이는' 법도 가르쳐준다(아모르파티는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운명에 대한 사랑 또는 운명애라고 번역된다. 니체는 운명의 필연성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을 때 인간 본래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 스토아주의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런 글을 남겼다.
모든 일이 자기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지 말고, 모든 일은 현실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러면 인생이 평온할 것이다. 

07. 의문을 품어라. 
내가 아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밖에 없다. 그런데 모른다는 사실조차 확신할 수 없다.
....
"과거부터 기록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이 모두 진실이고 누군가 알고 있는 사실이라 할지라도, 알려지지 않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인간의 지식에 비하면 이 세계는 얼마나 놀라운 것이가.... 신비로운 것 중에서도 그 자신만큼 놀라운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딛고 선 자리는 너무 휘청거리고 불안정해서 흔들거리고 미끄러질 것 같으며, 내 눈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니고, 뱃속이 비어 있을 때의 내 모습이 밥을 먹고 난 후의 내 모습과 전혀 딴 사람인 것처럼 보인다. 내 건강 상태가 내게 미소를 짓고 햇살이 밝은 아름다운 날에는 내가 멋진 친구가 되고, 발가락에 티눈이 생겨 괴로우면 나는 무례하고 불쾌하고 접근 할 수 없는 인간이되어 버린다.
....
우리와 우리의 판단, 그리고 언젠가 죽을 운명을 타고나는 것들은 모두 쉴 새 없이 흘러가고 굴러다닌다. 그러므로 한 사물을 기준으로 삼아 다른 사물을 확실하게 규정할 수 없다. 판단하는 존재나 판단되는 존재가 모두 지속적으로 변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어떤 것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막아버리는 막다른 골목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다른 어떤 것을 기준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은 새로운 생활 방식의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한다. 이 말은 모든 사물을 더욱 복잡하고 흥미롭게 만든다. 세상은 모든 관점을 고려해야하는 광활한 다차원의 지형으로 바귄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는 것 뿐이다. 몽테뉴의 말처럼, "우리 스스로 현명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08. 나만의 뒷방을 마련하라. 


09. 즐겁게 어울리고 더불어 살아라.
철학이 위대하고 희귀한 것들보다 더 유념해야 할, 작지만 끝없이 풍성하여 매우 효과적인 것 중에는 '호의(Wohlwollen)'가 있다. '호의'란 눈웃음, 악수, 그리고 거의 모든 인간적인 행동에 일반적으로 배어 있는 편안함 등 우호적인 마음가짐을 표현하는 것들을 의미한다. 교사와 관리는 누구나 자기 직무에 이 요소를 양념으로 집어 넣는다. 우리의 인류애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행위, 그런 행위에서 발하는 빛줄기, 모든 것은 이런 행위 속에서 성장한다.... 좋은 성격, 친절함,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호의... 이런 것들은 이른바 동정심, 자비심, 자기희생 등을 표현한 명언보다 문화에 훨씬 더 많이 이바지하였다.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의식에 관한 저서에서 이와 비슷한 본능을 설명했다. "울타리 밑에서 뼈다귀를 발견했을 때 느낀 환희, 나무와 가로등의 냄새,"등 개가 겪은 경험을 우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개들도 우리의 경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책을 한장 한장 지루할 정도로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개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그러나 동물과 인간의 의식상태에는 공통적인 성질이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환전히 빠져 있을 때 나타나는 '열의' 또는 '설렘'이 그것이다. 설렘은 관심의 대상이 서로 다르더라도 유사성을 인식하게 해준다. 이러한 유사성을 잊어버리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최악의 실수 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최악의 실수이다.

10.'습관'이라는 잠에서 깨어나라.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한 다소 반항적이지만 개방적인 해답인 '습관의 잠에서 깨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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