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II)
삶의 철학자 몽테뉴에게 인생을 묻다
어떻게 살 것인가?
11. 절도있게 살라.
낭만주의 시대 독자들은 특히 라 보에시에 대한 몽테뉴의 강렬한 감성에 사로잡혔다. 몽테뉴가 강렬한 감성을 보여주는 유일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사랑 이야기는 라 보에시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비극으로 끝나기 때문에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왜 서로 사랑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몽테ㅠㄴ의 간단한 대답, "그가 있었기 때문이고, 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은 모든 인간적 끌림의 초자연적인 신비를 나타내는 캐치프레이즈가 되었다.
몽테뉴는 신처럼 되려는 야심에 대하여 불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사람은 인간 이하로 전락하리라고 생각했다. 타소와 마찬가지로 그런 사람은 한계를 초월하려고 하지만 인간의 평범한 능력마저 잃어버린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인간이 되려면 단순히 평범한(ordinary) 방식이 아닌 보통(ordinate)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옥스퍼드 영어 사전은 'ordinate'를 '질서 정연한, 정리된, 정돈된, 규칙적인, 보통의'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는 알맞게 사는 것, 사물의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고 각 상황에 적절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몽테뉴는 알맞은 삶은 '우리의 위대하고도 영광스러운 걸작'이라고 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절대로 거창하지 않은 자질을 표현한 말이다. '몽테뉴에게 '범속함'이란 사물을 통찰하려고 애쓰지 않아서 생기는 아둔함이 아니라 자신의 관점을 초월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여 생기는 아둔함을 뜻한다. 이는 자신도 남들과 똑같고 인간 조건을 온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거이다. 자신은 여느 인간과 다르다고 생각한 루소에게서는 이런 자질을 찾아 볼 수 없다. 몽테뉴의 말을 들어 보자.
사람 구실을 잘 하는 것 만큼 아름답고 합당한 것이 없고, 이 삶을 자연스럽게 잘 사는 법만큼 얻기 어려운 지식도 없으며, 갖가지 병폐 가운데 가장 나쁜 것은 우리 자신의 존재를 경시하는 것이다.
12. 인간성을 지켜라.
츠바이크의 견해로는 몽테뉴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이 이렇게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나타난다. 그의 가치를 알려면 벌거벗은 '나', 즉 단순한 자신의 실존 이외에는 지킬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
전쟁, 권력, 전제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자신의 생명과 그 생명의 소중한 본질인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는 시대를 겪어본 사람만이 집단적 광기(herd insanity)의 시대에 내면적인 자아를 유지하는 데 용기와 정직, 투지가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안다.
13. 아무도 한 적이 없는 것을 해보라
나는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고, 내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내면을 부지런히 살핀다. 누구나 자기 앞만 쳐다보지만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본다. 내게는 나 자신에 관한 일 욍는 상관할 일이 없다. 나는 지속적으로 나 자신을 관찰하고, 나 자신을 잘 살펴보고, 나 자신을 음미한다.... 나는 나 자신 안에서 뒹군다."나는 시선을 다시 내면 쪽으로 접는다" "Je replie ma venue au dedans"
그는 "나는 어떤 것이든 통째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각 사물이 지닌 수백 가지 요소와 면모 중에서 나는 한 가지만 택한다. 때로는 그것을 겉만 핥아보고, 때로는 표면을 쓸어보고, 때로는 뼈까지 꼬집어 본다. 찔러볼 때도 있지만, 넓게 찌르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깊이까지 깊숙이 찔러본다. 내가 가장 자주 즐기는 것은 익숙지 않은 관점에서 사물을 보는 것이다.
14. 세상을 보라.
15. 너무 잘하지는 마라.
촌스럽고 정직한 몽테뉴의 태도가 오히려 뛰어난 외교 수완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의 동료들은 미로처럼 복잡한 속임수로 상대방의 문을 열려고 했으나, 몽테뉴는 촌스럽고 정직한 태도로 더 많이은 문이 열었다.
16. 철학적인 사색은 우연한 기회가 있을 때만 하라.
17. 성찰하되 후회하지 마라.
18. 통제를 포기하라.
19.평범하고 불완전한 사람이 되라.
버지니아 출프가 말한 마음의 사슬은 학문의 전통은 물로,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에 자기중심적으로 사로잡혀 있지만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사슬이다. 이 모든 사람이 '인간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질,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잘 이어 나가야 하는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서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나는 보잘것없고 찬란하지 않은 내 삶에 대하여 쓰고 있다. 그러나 상관없다. 평범하고 사사로운 삶도 부유한 이들의 삶 못지않게 모든 도덕 철학과 밀접하게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장 부유한 이의 삶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삶, 그것이 평범하고도 사사로운 삶이 아니겠는가.
그는 늙어간다는 사실에서도 이런 교훈을 얻었다. 연륜이 쌓인다고 지혜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늙은이에게는 젊은이보다 더 많은 허영심과 결점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늙으면 '어리석고 낡은 자존심에 빠지고, 따분한 수다나 떨고, 쉽게 발끈하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으로 변하고, 미신에 사로잡히고, 터무니없이 재산에 대해서 걱정하는 '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방향이 틀렸다. 나이 먹음의 가치는 그러한 결점을 수정하는 데 이씨 때문이다.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은 찾기 어려운 방법으로 자신의 결점을 찾을 기회가 생긴다. 자신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쇠퇴의 흔적을 보면서 자신도 한계가 있는 인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나이를 먹는다고 슬기로워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하면 결국 일종의 지혜를 얻는다.
결국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은 이렇게 결점을 지닌 채 살아가고 결점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의 존재에는 갖가지 역겨운 특성이 단단히 들러붙어 있다... 그러나 누군가 이런 특성의 씨앗을 인간으로부터 제거한다면 우리 삶의 근본적인 여건이 파괴될 것이다.
철학도 실생활에 적용할 때에는 '투박하고 애매하게' 만들 필요가 있다. '모든 일을 속속들이 밝힐 필요는 없다'. 자신의 천재성에 눈이 먼 타소처럼 산다면 무엇을 얻겠는가. 온건하고 겸손하고, 다소 흐리멍덩하게 사는게 더 낫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이 해결해줄 것이다.
20. 인생, 그 자체가 해답이 되게 하라.
인생은 그 자체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자신이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사람이더라도 천국에 대한 환상, 상상적인 지구의 종말, 완벽주의자의 환상보다 훨씬 크다는 몽테뉴의 신념이 필요하다. '학살과 살인을 저질러 하늘과 자연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모든 종교가 보편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믿음'이지만, 몽테뉴에게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다. 인생에 그런 것이 필요하다고 믿는 것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존재가 실제로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면 물 양동이에 집어 넣으려고 들고 있는 강아지를 쳐다보거나 놀고 싶어하는 고양이를 쳐다볼 때, 그 강아지나 고양이도 당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여기에는 추상적인 신조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단지 두 개체가 얼굴을 맞대고 서로에게 최선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몽테뉴가 '에세'말미에 인용한 호라티우스의 시
레토의 아들 아폴론 신이여,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건강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해주소서.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하게 해주시고,
노년에는 추한 꼴을 보이지 않고
음악을 벗 삼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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