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성 여사의 가족은 대가족이기도 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정해 공동경험을 많이 쌓도록 했단다. 개인주의가 강조되는 미국에서 동양의 집단적 자아, 공동체 의식을 경험하게 하여 대화를 통해 협력의 의미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일 땐 가족만의 행사로 토요일이면 함께 도서관을 찾고, 금요일 밤마다 같이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가족의 밤을 보내고 주말 저녁이면 공부방에서 온 식구들이 함께 공부하고, 아이들 머리를 깎아주며 대화를 나누고 토요일 아침 식사 후에는 꼭 가족회의를 했다고 한다.
가족회의에서 리더는 가정에서의 위치와는 상관이 없었으며 매주 한 명씩 차례대로 아이들은 토론을 이끌고 회의 주제를 준비하며 부부는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하는 법을 배우고 아이들은 민주주의 적 회의 진행 방식에 익숙해지며 부모 자식 간이라도 서로 배우고 합의하며 협력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회의가 교훈적이라고 하면 자칫 그 주제가 거창할 거라 오해하기 쉬운데 한가지 예를 들면 "매주 쓰레기를 밖에 내놓는 일은 누가 맡을 것인가", "밤에 문단속은 누가 할 것인가" 처럼 사소한 것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 문제를 놓고 아빠와 아이들이 논쟁을 벌이는데 아빠의 의견은 형제 자매 중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이 쓰레기 문제와 문단속 문제를 모두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빠의 의견이 한국적인 사고라며 반론을 제기했다. 순번제로 하는게 공평하다는 것이었다.
아빠와 아이들이 한참 동안 양보하지 않은 곳에서 전혜성 부인이 나서 아버지의 제안을 따라보자고 했단다.
"아버지는 가족 전체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밤에 문은 꼭 잠가야 하고 또 쓰레기는 제때 버려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에게,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이 많은 사람에게 맡기려는 것이지. 아버지는 개인 사정보다는 전체의 입장에서 일이 해결되는 것을 원하시는 거야. 그런데 너희는 너희 한 사람 한 사람의 편의에 더 관심이 있는 것 같아. 다시 말해, 너희는 '개인 정의'를 주장하고, 아버지는 가족 전체의 안위를 위한 '공동 정의'를 주장하시는 거야. 그리고 너희들은 '지금'의 정의에 관심 있지만 아버지는 정의가 '시간이 지나면' 이루어질 거라고 믿으시는 거야. 몇 년 있으면 큰아이가 먼저 대학 가서 집을 떠날 테니 당장은 불평등해 보여도 긴 시간을 두고는 어쨌든 모두에게 책임이 돌아갈 테니 말이야. 너희들이 주장하는 순번제와 결국 같은 셈이지? 너무 성급하게 지금 당장의 것만 보지 말고 길게 생각해 보렴. 아마 한국식이라며 싫어하는 방식도 결국 너희들의 주장과 크게 어긋나지 않을 거야. 서양에서는 시간을 직선의 개념으로 보고 내일이 오늘보다 나으며 변화를 진보라고 보지. 그러나 우리 동양에서는 시간이 순환한다고 믿는다. 환갑도 그렇고 사계절이 있어서 일정한 시간 안에서 빙빙돈다고 생각해. 고로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공평하게 될 거야."
아이들은 당장 마음에 안 들고 미심쩍더라도 일단 '한국적인' 해결책을 받아들이기로 했으며 가족 뿐만 아니라 사회에 나아가서 어떻게 상대방의 입장을 받아들여 조율하고 합의를 이끄어 내야 하는지 깨우쳐준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가족회의를 통한 교육의 잠재성은 실로 대단했으며 야단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신들이 정한 규칙을 지키려 했고, 집안 문제도 협조 받을 수 있기에 대화와 공동 경험의 힘은 참으로 크고 놀랍다고 전한다.
출처 : 섬기는 부모가 자녀를 큰사람으로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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