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그르니에 존재의 불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얇은 책이였다.
마음을 다해 읽으면 참으로 오래 읽을 책 같기도 눈으로 읽으면 참으로 금방 읽을 책이기도 하다.
읽히는 대로 읽었던지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내 기억에 깊이 남는 건 없다.
어느 한 귀퉁이에 적어 놓은 구절,
그 때 무슨마음으로 적었뒀는지 그 기억 또한 없다.
내가 읽고파 선택하여 읽은 책과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
그 차이 또한 이렇게 큰듯 하다.
그런것 보면 존재의 불행,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희생이 조금은 적었나 싶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어떤 고정된 지점도 갖고 있지 않으며 모든 것이 생겨날 수 있고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이 세상이 매일매일 똑같은 것은 바로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세상은 변화하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일어날 수 있었다.
그냥 살아갈 때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매일 매일 일상 속에서는 모든 것이 평범하다. 그러나 어떤 사건이라도 막상 이야기를 하려 들면, 그것은 모험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그냥 살아가거나 이야기를 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실존한다는 것, 그것은 사고하지 않는 것이다. 실존한다는 것, 그것은 권태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권태는 너무나 희미하고 너무나 형이상학적이라서 나는 그것이 창피하다.
우연성, 불안정성, 평범함, 불만, 이런한 것들이 바로 실존의 특성들이다. 실존은 정당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실존하게 되자마자 우리는 선택을 하여야 한다. 인간은 아무 데서나, 아무렇게나, 또 아무 때나 실존하는 것이 아니다. 선택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자신을 벗겨버리는 것이며,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일부분을 희생하는 것, 간단히 말해 무언가를 완수하기 위한 유일한 조건인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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